사대부의 시대

강유원 / 2009-9-13 / 서평

고지마 쓰요시(지음), 신현승(옮김), <<사대부의 시대>>, 2009, 초판2쇄. [9788988165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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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주자학과 양명학'이다. 이 원제는 번역본의 부제 '주자학과 양명학 새롭게 읽기'에 들어있다. 한국어 번역본이 지시하는 "새롭게 읽기"가 무엇인지는 저자의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추려낼 수 있겠는데,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20세기의 주자학 연구가 이룩한 지적 영위는 "주자학 내부에서만 체취한 철학적 성분에 지나지 않았다. 즉 주자학을 전체적으로, 나아가 '철학'의 속박과 제약에서 벗어나 살펴보는 시점은 결코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주자학과 양명학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를 초점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직 "주자학 양명학 연구의 표준 학설이 아니"며,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지적 산물"일 뿐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한국어판 부제의 "새롭게 읽기"는 주자학과 양명학을 "사상.문화사적 입장" — 옮긴이의 말을 빌면 — 으로 해소하려는 시도를 지칭한다 하겠다. 이러한 해소를 위해 저자가 어떤 역사적 요소들을 참조하며, 그 요소들을 어떻게 조직하는지를, 가능한 한 일체의 상상력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논지 전개를 눈여겨 보는 것이 우리의 독서가 될 것이요, 이러한 독서를 바탕으로 우리는 보편적 이론으로 제시되는 철학체계나 체계적 철학 이해에 필요한 요건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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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철학 체계를 "사상.문화사적 입장"에서 본다 함은 "텍스트에 침잠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문맥[context]에 입각하여 고찰"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철학이 역사적 사회적으로도 환경을 달리하는 우리에게도 의미를 지니는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대상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필자는 송학(宋學)을 좀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사용하여 '도학(道學)'이외에 구양수, 왕안석, 소식 등의 사상도 포함한 새로운 학술사조 전반"을 가리킨다. 여기서 필자가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송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주자학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우선 주자에 의해 완결된 체계를 갖추고 "이윽고 동아시아의 사상계를 석권하기에 이르렀던 유파"인 도학이 있으며, 구양수, 왕안석, 소식 각각이 세운 학파도 들어간다. 우리는 송학을 구성하는 이들 학파의 전개 단계를 구별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넷으로 나눈다.

1) "불교과 도교에 대한 유교의 투쟁." 이는 송학 성립 이전의 단계라 할 수 있고, 대표자는 한유(韓愈)와 이고(李翺)이다.
2) "유교 사상 내부에서 벌어지는, 낡은 유파('훈고학')에 대한 새로운 유파의 투쟁. 한유에게서 그 원형이 보이고 있지만, 구양수 등에 의해 학계를 주류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3) '송학' 내부에서 벌어진 도학과 다른 유파들 사이의 투쟁. "주요한 논적으로는 왕안석이 창시한 '신학(新學)', 소식의 사상과 계통을 이어받은 통칭 '촉학(蜀學)'이 있다.
4) "도학 내부에서 벌어지는 주자학과 기타 유파와의 투쟁" 이는 주희의 학설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주희의 등장 이전에 도학을 대표했던 양시(楊時), 장구성(張九成), 호굉(胡宏), 같은 세대의 여조겸(呂祖謙), 장식(張栻), 육구연(陸九淵), 진량(陣亮) 등의 학설을 비판함으로써 주희의 교설이 주류의 지위를 탈취해간다."

마지막 단계 이후에 성립된 학설들은 정주성리학(程朱性理學)과 육왕심학(陸王心學)의 대립구도에서 설명된다. 저자는 이 대립구도를 설명하는 요소로 "'정치'에 관한 사항"을 거론한다. 다시 말해서 정주와 육왕의 학설에 관한 기존의 설명은 "철학 또는 윤리학으로서의 해설에 치중해 있으며, 본래 유가가 가지고 있는 정치학으로서의 측면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현재 주자학과 양명학에 관해서 언급할 때 문제점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주자학과 양명학 새롭게 읽기'는 "사상.문화사적 입장"에서 보는 것이고, 이는 다시 "정치학으로서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학으로서의 유교'고찰이 '사상.문화사적 입장'에서의 파악과 동일시될 수 있는지 의문이기는 하나 저자가 말하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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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1장 "사대부의 시대"는 송대의 사대부들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에 이어 그들 내부의 갈래를 정리하고 있다. 우선 "유교 고래의 인치론(仁治論)을 전면에 내세워 정태적인 국가질서 안정에 부심한 보수파 사마광(司馬光)"과 "경제적 상황과 정세에 적합한 동태적인 재정국가의 수립"을 주장한 "복고적 혁신파"인 왕안석의 대립이 있다. 그런데 이 대립은 표면적일 뿐 그들은 "천하의 질서를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시각으로 파악하여 모든 측면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게다가 과거관료층 즉 사대부라는 인식에서는 완전히 일치하였다." 소식은 "왕안석 비판파의 관료였으며 사마광은 물론이고 왕안석이나 도학과도 완전히 색다른 학풍의 일파를 이루었던 유학자다." 그리고 소식의 기풍은 도학의 수양론과도 양립할 수 없었다.1)

우리는 제1장의 설명에서 "정치학"으로서의 측면이 특별히 부각되었음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학설상의 차이를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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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챕터 "주자와 왕양명의 생애"는 "체제교학(體制敎學)으로서의 주자학"이 성립하기까지의 주자의 생애와 시대에 대한 서술 및 그 의의, 왕양명의 생애와 성품을 정리한 뒤, 두 학설의 동이(同異)를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양명학은 주자학과 서로 맞지 않은 것처럼 간주되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로서 양명학은 철저하게 주자학의 연장된 전개형태이다… 양자의 외관상 서로 다른 점은… 주희와 왕수인간 대조적 성격에서 유래하는 부분이 크며, 그 때문에 양자는 역점을 두는 방식이 조금은 다르나 사고의 기반은 공유하고 있다. 청대에 이르러 양자를 일괄하여 '송학'이라고 비판적으로 호칭하게 된 사실의 배경에는 그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주성리학과 육왕심학이라는 차이는 왜 생겨났는가. 저자는 여기서 "두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차이"를 말한다. 이 환경에는 출신환경, 가정환경, 문화체험환경의 차이 등이 속한다. 이것을 고려한 뒤 저자는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최초의 시점에서 주자학은 벼락출세를 이룬 허영의 산물, 양명학은 방탕한 자식의 도락(道樂)"이라는 귀결에 이른다. "최초의 시점"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학설은 환경과 무관하게 사유체계를 가질 수 있으므로 그것을 전적으로 환경에 환원시키는 것은 타당치 않아 보이고, 이것이 과연 "정치적 측면"인지에도 의문이 있다. 물론 우리는 어떤 철학자의 학설을 검토하고자 할 때에는 이러한 환경을 참작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여기서 얻을 수 있다.

두 사람의 차이를 이렇게 규정한다해도 우리는 성즉리(性卽理)와 심즉리(心卽理)는 서로 다르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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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성리학은 그 명칭 그대로 이정(二程, 程顥와 程頤)이 정립하고 주자가 완성한 '성즉리' 이론을 근본으로 삼는다. 저자에 따르면 "송대에 리는 평상시에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일상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주희와 문인들과의 문답을 살펴보면 '리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이루어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리는 단지 '~은 리다'라는 술어의 형태로 쓰여 설명해주는 말이었으며, '리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형태의 주어로서 설명을 요구하는 말이 결코 아니었다."2)

성즉리라는 말은 형식적으로 보면 성을 설명하는 서술어로 리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성이며, 이정은 이것을 리라고 하는 당시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술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요, 이는 '성은 선도 악도 아니다', '성은 선하다' 등과는 다른, 성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다. 그런데 양명학은 성이 아닌 심을 리라고 본 점에서 정주의 학설과는 다르다. 우리가 여기서 리를 '중요한 것, 핵심적인 원리' 등으로 이해한다면 정주의 학설은 '성이 중요한 것'으로, 양명의 학설은 '심이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두 학파가 중요하게 여긴 것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그런데 저자는 "양명학에서 말하는 '심은 리이다'하는 것에는 '하지만 성은 리가 아니다'라는 함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즉리'에 관해서는 주자학과 동일한 인식의 기반 위에 서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심이 성을 포속함을 밝혀야 한다. 저자는 "양명학에서는 심도 성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면서 "심은 성과 정(情)이라는 별개의 단계를 통일하기 위한 명칭이 아니라 성을 갖추고 정이 움직이고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일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양명의 심은 정주의 성을 확장(또는 포속)한 것인 셈이므로 성즉리와 심즉리를 그처럼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하다 하겠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확장은 정치적인 상황에 기인한다. "주자학이 도덕적 수양과 정치적 실천을 단계적으로 구별한 데 비해, 양명학은 현장주의의 입장에 서서, 양자의 벽을 허물어 걷어 치우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던 사회의 정세가 그들로 하여금 서재에서 문헌적 지식만을 심심풀이로 즐기는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양자의 차이의 원천은 이론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던 사회의 정세"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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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8장까지의 논의는 부분적으로는 학설이론에 대한 탐구가 혼합되어 있기는 하나 정주와 양명의 차이를 '정치적인 측면'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계속된다. 그러나 9장부터 12장까지는 예교와 풍속, 당송변혁, 유.불.도의 관련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 아래 논의가 펼쳐지며, 동아시아의 근세, 주자학과 양명학의 미래와 같은 장들에 오면 본래의 탐구 목적은 거의 잊혀져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아시아의 철학사상에 관한 기초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교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는 하나 주자학과 양명학을 사상.문화사적 입장으로 해소하려는 시도로서는 부족하다 할 수 있다.

물론 혹자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가 이론적인 것에 있기 보다는 사회의 정세에 따른 구별일 뿐'이라는 주장 자체로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체계를 이해할 때 사상.문화사적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과 그것으로 해소한다는 것은 분명 다르다. 후자를 시도하려면 사회의 정세와 학설이론의 상응관계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더 나아가 학설 이론의 종속성을 거의 확증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 저작에서 우리는 이러한 제시와 확증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저작에서 우리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형성과 전개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회적 정세 등에 관한 정보 — 이것 역시 그리 풍부하지는 않다 — 를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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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소식과 도학파의 차이 뿐만 아니라 위 전개과정 전반에 관한 상세한 논의를 피터 볼의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 http://allestelle.net/?p=1146 )에서 발견할 수 있다. []
  2. 이는 고대 희랍에 있어서 '신theos'이라는 '술어'의 용법과 유사한 측면을 가진다. 거드리에 따르면 "희랍인들은 그리스도 교도들이나 유대인들이 하듯, 먼저 신의 존재를 단언한 다음 신의 속성을 열거하기 시작하는, 이를테면 '신은 선하다', '신은 사랑이다' 등의 말을 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삶이나 자연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즐거움이나 두려움을 주는 것들에 의해서 몹시 감화를 받거나 경외의 마음을 갖게 되면 '이것은 신이다'라든가 또는 '저것은 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 교도는 '신은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희랍인은 '사랑은 theos(신)이다', 즉 '하나의 신이다'라고 말한다." 거드리, <<희랍 철학 입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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