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몇 권
강유원 / 2009-11-29 / 서평오카베 마키오(지음), 최혜주(옮김),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 어문학사, 2009.[9788961840804]
강정인 외(지음), <<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 후마니타스, 2009.
박종기(지음), <<새로 쓴 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2009. 초판 3쇄[978899151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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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필자들이 쓴 글을 묶은 <<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은 ""'민주화'를 중심으로 본 한국 현대 정치사상의 전개: 한국 현대와 서구 근대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년 동안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민주화 연구팀이 수행한 기초 연구 결과 가운데 한국의 민주화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된 것이므로 내용의 부실함이 넉넉히 짐작되며 "기초 연구 결과"인 까닭에 자료집 차원의 정리임을 예상할 수 있겠다. 이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수행하고 그로부터 사유자와 행위자 모두에 의해 '사유된 것(사상(思想) Gedanken)'을 도출한 뒤, 그것을 "서구 근대"의 "이념"과 대조하여 독자적 성격을 밝혀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나, 강정인이 쓴 글인 첫번째 챕터 "보수주의: 비동시성의 동시성 그리고 모호한 정상화"는 "사상"을 시도하고 있으므로 일독할만한 이유가 조금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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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와 급진주의는 이념의 구체적 내용에 따라 실체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및 다른 이데올로기와 관련해서만 규정되는 상대적 이데올로기이다. 특히 보수주의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지킬 것이 있는 집단에게만 생겨난다.1) 그러므로 한국 현대사에서의 보수주의를 논하기 위해서는 2009년 현재 보수주의자를 자칭하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들의 속성을 규준으로 삼아 이전 시대로 소급해들어가서는 안된다. 틀을 시도하기는 했으나 보수주의에 대한 후대의 규준으로써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정인의 논의는 실패했다. 당대의 맥락에서 보수주의의 현상형태들을 기술하고 그것과 대립되는 제현상을 정립한 뒤, 상대적으로 보수의 위상에 자리잡은 것을 지적하면 보수주의는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이를테면 유럽 근대의 보수주의는 근대화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전근대적 질서를 체계적 이론적으로 옹호하려는 노력의 결실로서 등장한 것이요, 그에 대응하는 프랑스 혁명가들의 주장은 급진주의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다시 19세기 중반에는 보수주의로 자리잡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주의는 어디서 시작될 수 있을까? 해방공간에서의 보수주의자들은 누구를 가리킬 수 있겠는가? 그 시기에 '지켜야 할 것'을 가졌던 자들이 누구였는가를 따져보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친일파와 지주들을 지목할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이 주로 모인 정치집단은 한국민주당이다. 이들 이후에도 지켜야 할 것을 가졌던 자들의 주장을 정리한 다음 그것들에 일관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것을 추려내면 한국 정치의 보수주의 이념을 서술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 챕터에서 공들여 논의되고 있는 서구 보수주의와의 비교는 사실 불필요한 것이라 할 것이다. 서구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라해도 그것이 한국에 들어온 다음에는 일종의 도래물이 되므로 보수가 아닌 진보나 급진의 자리에 놓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9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 중에는 박정희를 존숭하는 이들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것, 국가주도의 성장과 개인의 물질적 부의 증진이라는 목표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보수주의자인 것이다.2) 그런데 과연 박정희는 보수주의자였는가? 우리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는 지켜야 할 것이 없었다.3) 그는 근대주의자였고 급진주의자였다.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에는 이러한 사실이 있다. 그는 살아 생전에는 급진주의자였는데 죽어서는 보수의 기원이 된 것이다.
박정희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전적으로 새로워 보이는 일을 벌였다. 그것은 물질생활의 개선, 능력주의, 전통적 신분질서로부터의 탈피4) 등이었다. 이로써 그는 한국 사회 근대화 프로젝트의 출발점을 장악한다. 그는 지킬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급진적 근대화 기획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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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근대국가 주도의 산업주의를 어디서 배웠을까? 막연하기는 하나 그의 만주군대 경험이 떠오른다. 여기서 우리가 참조해볼 수 있는 자료는 <<일본의 군대>>와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이다. 후자의 책은 만주에 관한 실증연구서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의 "언론계.학계 일부에서는 일본은 만주의 근대화5)에 공헌했다고 하는 언설이 유포되어 있었다. 이러한 풍조에 대해 냉철한 실증연구의 입장에서 파시즘기의 일본6)의 침략정책을 서술"한 것이다.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은 관동군이었으므로 만주국은 분명히 일본의 괴뢰국이었다. 관동군, 만주국 정부, 남만주철도주식회사(滿鐵) 관계자들은 "대소전 준비의 경제적 기초"를 준비하기 위해 "광공.농축산.교통통신.이민의 각 부문"에 걸친 "만주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5개년 계획에는 만주국 총동원 체제 계획도 들어있었는데 이를 위한 민중동원을 담당한 단체는 만주국 건국이념의 하나인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실현을 목표로 삼은 "협화회(協和會)"였다. 또한 만주국은 근대적 계획국가답지 않게 '왕도낙토(王道樂土)'라는 낡은 유가이념을 내세우고 있기도 했다.7)
만주국은 대만이나 조선과 같은 일본의 기존 식민지와는 역사적 성격이 다른 '독립국'의 모습을 취하기는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착취받는 곳일 뿐이었다. 물론 "만주국 시기에 [중국]동북의 정치기구나 산업구조가 근대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근대화는 동북사회 자신의 역사의 필연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일본의 총력전체제의 확립때문이었고, 오히려 동북사회의 자발적 발전을 막는 것"이었다. "동북의 자원과 생산물은 대량으로 일본에 빼앗기고, 증산강행으로 산업설비는 노후화하여, 민중의 노동력은 한계점까지 착취당했다… 만주국이 남긴 '근대적인 경제기반'은 신중국에서는 가끔 마이너스의 기반일 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식민지근대화론'이 허구임을 밝혀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서 만주국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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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 3장은 "민족주의: 한국의 민족주의 형성과 민족주의 이념의 정치"이다. 이 챕터는 민족주의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지배세력과 저항세력 모두의 이념으로서 기능하였다는 주장을 펼친다. 전자의 사례로는 이승만의 일민주의(一民主義)8), 박정희 정권의 영속론적 민족원리9)등을 들 수 있겠다. 저항세력의 민족주의는 한일회담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을 반민족적 정권으로 규정한다. 그러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은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일까? 이에 관해서는 아주 많은 책이 나왔으니 새삼 목록을 만들기도 귀찮을 정도이다.
<<새로 쓴 5백년 고려사>>는 고려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책이다. 왜 고려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고려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에 유념하고 있다. 성리학 하나로 500년을 이어간 조선과 다양한 이념의 조화로 500년을 이어간 고려와의 비교정리가 초반에 제시되어 '전통'이라면 조선만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아주 낯선, 그러나 한반도에서 영위된 삶의 일부였던 과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민족' 개념의 출현에 대해서도 실마리 하나를 던져준다. 이 책에 따르면 "통일신라의 삼국통합은 정치적인 통합에 불과했을 뿐 고구려나 백제의 다양한 인적 자원이나 문화적인 요소를 통합하는 데는 실패"했다. "고려왕조는 삼국시대 말기보다 훨씬 복잡다기한 사회를 실질적으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에 비해 통일왕조로서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의 통합을 민족의식 형성의 계기로 이해할 수는 없다. 민족의식은 정치적 문화적 통합은 물론이요 피아(彼我)의 구별까지도 원리적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고려를 "궁극적인 민족통합"국가로 말할 때 '민족'은 아주 느슨한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 분명하기는 하나 민족의 형성에 요구되는 문화적 제도적 최소장치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며, 이는 통일을 열망하는 이들이 챙겨두어야 할 논의이기도 할 것이다.
- 그런 점에서 지킬 게 없는 빈털털이들이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짓이며, '뭐든 가진 자는 어떤 의미에서든 보수주의자'라는 말은 상당히 타당하다. [↩]
- 여기서 우리는 '박정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어디에 집중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박정희에 대한 비판은 박정희주의자들을 돌아서게 할 수 없다. 근원적인 해법은 그들이 딛고 있는 국가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라는 깊은 뿌리를 뽑아내는데 있다. [↩]
- 물론 집권 후반기에는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했던 보수주의자였다. [↩]
- <<그들의 새마을 운동>>에는 새마을 운동 시기에 자신의 본래 이름으로 불림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을 갖게 된 여성들이 등장하여 과거를 자랑스럽게 회상하는 내용이 있다. 이들이 지금 어떤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지는 새삼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
- 이는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근대화했다는 논의와 같은 맥락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 근대화를 완성한 것은 일본 근대화의 중요한 축이었던 일본 제국 군대 출신으로서 만주에서 근무한 박정희가 아닐까 싶다. [↩]
- 만주사변에서 1945년 패전까지 14년(만주사변의 전쟁준비기를 넣어 대략 15년)사이"인 15년 전쟁의 기점은 만주사변이며, "이것을 계기로 정치에 대한 군부의 발언권이 증가하고, 이윽고는 군부를 중심으로 파시즘 지배가 확립된다. 만주사변은 일본의 파시즘화에 커다란 징표가 되었다." [↩]
- "'패도(覇道)'만으로 제국공간이 확장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을때 일본은 제국화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했고, 여기서 도덕과 권력의 적극적인 결합이 모색되었다. 제국주의자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가 말한 '왕도적 제국주의(王道的 帝國主義)'였다… 만주국 건설은 '왕도낙토'의 구현을 표방하였다. '동아신질서'와 '대동아 공영권'의 건설은 '도의'에 기반한다는 점이 반복해서 강조되었다… '대동아전쟁'은… '정의 일본의 나아갈 길'로 규정된다." 장인성, <<근대 한국의 국제 관념에 나타난 도덕과 권력>>, pp. 106-107[9788952107664] [↩]
- 이것에 관해서는 아주 긴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 챕터에서는 핵심적인 것조차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민주의는 파시즘에 가까운 것이며, 이는 안호상에 의해 정교화되어 박정희 정권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 "유사역사학 태두 중 하나인 안호상, 그는 누구인가?" [↩]
- 박정희는 급진적 근대주의자이면서도 '국민교육헌장'에는 '민족중흥'이라는 낡은 이념을 끼워넣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