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몇 권

강유원 / 2010-2-19 / 서평

프란시스코 바렐라(지음), 유권종,박충식(옮김), <<윤리적 노하우>>, 갈무리, 2009. [9788961950220]

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근대성은 동아시아인이 성취해야 할 이상인가'라는 의문이 머리 속에서 오고갔다.

스승인 마뚜라나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바렐라는 칠레 출신의 학자이다. 여기서 '학자'라고 한 것은 그의 전문 분야를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지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강연을 묶고 거기에 해설을 붙인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윤리적 행위의 핵심이 "추론(reasoning)"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숙련된 행동(ethical expertise)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윤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윤리적인 행동을 자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미리 만들어진 일종의 선험적 자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 개의 강의 중 첫번째 것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인지과학에서 끌어오고 두번째와 세번째 것은 맹자, 티벳 불교, 노자 등의 사상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가져오고 있다. 이 강의들을 다 읽으면 윤리적으로 숙련된 현자(the wise)는 오랜 수신을 통해 형성된 품성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루어지는 사람, 교훈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경향에 따라 행위하는 사람, 무의식적 자발성과 이성적 계산 사이의 중도(中道)를 걷는 사람이라는 귀결에 이른다.

이러한 귀결의 가장 밑바탕에 놓인 것은 지식에 대한 규정이다. 해설에 따르면 우리의 지식은 구체적이고 체화된 것이고, 통합적이며,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일반적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때 우리가 얻게 되는 지식은 구체적인 것이며, 인지는 신체의 감각에 의존하고 이 감각운동은 포괄적인 생물학적, 문화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체화된 것이며, 신체적 경험의 구조화된 본성에 기반을 두고 신체의 상호작용에 의한 경험들의 구조화된 측면들로부터 개념적 구조들까지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통합적이며, 지각은 미리 주어진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운동의 능력과 분리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행동이 유도하는 지각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에따라 상위의 인지구조 역시 반복되는 행동의 유형으로부터 창발된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것이다.

바렐라의 논의를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넓은 의미의 구성주의부터 시작하여 후설, 메를로-퐁티, 비트겐슈타인은 물론 근대 서구 철학의 거장들을 거의 다 읽어야 하겠지만 — 이 책의 역자해제는 그것을 암묵적으로 권하고 있다 — 이 책으로부터는 그것을 얻어낼 수 없으니 국내에 이미 출간된 다른 도서목록이 요구된다. 역자해제에서 이것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카이즈카 시게키(具塚茂樹)(지음), 김석근(옮김), <<제자백가: 중국고대의 사상가들>>, 까치, 1989.

절판된 책이지만 다시 찾아 읽어볼 가치가 있다.

"겨우 2세기 반 정도의 짧은 기간 안에" 중국사상사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전국시대의 사상가들, 즉 묵자, 노자, 장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을 다룬다. 중국 고전 공부하면 떠오르는 고리타분한 문헌 고증과 자구 해석이 아닌 시대적인 배경을 논하면서 그들 사이의 논쟁 등을 가볍게 다루어 나간다. 그렇다고해서 난삽한 뒷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옮긴이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이 책을 통해서 제자백가 사상의 개략적인 윤곽을 더듬은 다음 직접 원전을 통한, 제자백가 사상의 좀더 깊은 이해에로 나아가는" 순서의 맨 앞자리에 놓을만한 책이다.

이해영(지음), <<전국시대 비판철학>>, 문사철, 2008. [9788996119326]

카이즈카 시게키의 책에서 "개략적인 윤곽을 더듬은" 다음에 손에 집어들 수 있는 책이다.

사상에 대한 이해는 문헌을 꼼꼼하게 읽는 것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다. 사상의 맥락을 따져 묻지 않으면 사상은 보편적인 유물로 전수되기만 할 뿐 생동성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지혜를 가져다 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중국 사상'이라 부르는 것들을 이해하려면 '오늘날의 중국' — 이것은 사상의 이해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이 아닌 그것의 원형이 배태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들여다 볼 때에만 가능하다. 저자의 말처럼 "전국시대는 격동하는 역사의 전환기"였으며, "전 중국의 통일과 평화와 민생의 안정을 위해 새로운 시대정신이 간절히 필요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지식인 집단인 제자백가 사상가들은 처한 입장에 따라 시대를 달리 진단하였다. 진단한 내용이 달랐으므로 당연히 처방의 내용도 달랐다." 저자가 제자백가의 사상을 잘라낸 단면은 바로 사상가들이 "처한 입장"이다. 다시 말해서 전국시대라는 가장 큰 범위의 사회경제적 상황, 각 사상가가 대변하던 집단과 계층, 그에 따른 정책 처방이거니와, 저자는 자신이 자른 단면을 루시엥 골드만의 <<인문과학과 철학>>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어떤 사상가의 사상을 이해할 때 그와 대비되는 학설 및 하부구조와 그 사상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서의 상이한 해석 및 그 해석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결정지은 경제적.사회적 조건과 대립시켜 본다면 그 사상은 더욱 잘 이해된다." 우리는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시각으로 중국 고대 사상을 논의하는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어 있지만 이 책은 그 모든 독서의 집약이자 안내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전국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보자. 이 시대는 노예제 국가에서 봉건전제 국가로의 전환기였다. 귀족들이 대를 이어 누리던 지위와 봉록이 폐지되고 특권이 박탈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대두된 핵심적인 과제는 새로운 토지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때는 어김없이 토지가 근본적인 요소로서 등장한다. 어쨌든 "전국시대 초.중기 100여 년 간의 변법운동을 통해 종족 노예주 귀족의 토지와 관직에 대한 특권이 폐지되었다. 신흥지주계급은 완비된 관료 제도를 마련하고 방대한 군대를 갖추어 권력이 군주에게 집중된 강력한 중앙집권적 봉건관료제 정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는 "봉건제의 확립에 따라 농업과 수공업이 상당한 정도로 발달하였고, 상업과 도시도 흥기"하였다. 철제 농구의 사용과 우경(牛耕), 수리시설과 관개시설의 개선, 단위면적당 생산량 확대, 금속화폐의 보급, 상업과 도시의 발달과 같은 고대 중국사의 상식적인 사실이 사상과 연결되는 지점은 계급관계에 있다. 지주계급은 봉건왕족, 공훈지주, 관료지주, 회민지주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자영농, 개인수공업자, 고용노동자 등과 같은 피지배계급과 정립관계에 놓였다. 여기서 "지식인은 하나의 독특한 계층을 형성"하는데 그들은 "어느 특정한 계급 속성을 지닌 것이 아니고 어떤 계급에 복무하는가에 따라 계급 속성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전국시대의 지식인을 살펴볼 때에는 그가 "어떤 계급에 복무하는가"를 중요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유가, 묵가, 장자, 순자의 사상은 인간의 도덕의식이라는 당위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 생산노동과 실용성을 강조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대중의 공동이익과 정치적.경제적 평등, 자연적 본성만을 참된 것으로 봄으로써 이르게 되는 주관의 자유, 사상의 종합적 통일 등으로써 집약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들의 사상은 다양한 요소들의 접합으로서 등장한 것이요, 특히 지식인 자신이 처한 입장을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측면에서 이 사상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맹자의 정치론은 기본적으로 민심의 향배에 기초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민본주의자'로 불린다. "민심의 향배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좌우되고 백성이 국가존립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점에서 맹자의 사상을 민본주의라고 보는 데 큰 무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에게 있어 백성은 항상 대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백성의 동향이란 오로지 비주체적인 것들의 동향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위정자의 시혜 여부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또한 맹자는 "토지를 생산자에게 고르게 분배하고 벼슬하는 자의 봉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책으로 정전제(井田制)를 주장한다. 이는 "민생을 위한 일정한 생업의 확보[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이자 맹자의 사(士)로서의 현실적 자기확보"이기도 하다. 맹자의 이러한 주장은 "온건한 개량주의 형식으로 당시의 구귀족계급과 타협하고자 하는 구귀족전화 지주계급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소생산자 전화 지주계급을 대표하며 철저히 귀족계급의 세습특권을 박탈할 것을 주장하는 법가의 사상과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은 맹자가 말하는 '사'이다. 맹자는 노심(勞心)과 노력(努力)을 구분하는 분업론을 제시하였는데, 전자를 사의 임무로 보았다. 성왕(聖王)의 인재등용과 오륜(五倫)의 교육, 즉 "군주에게 등용되어 그를 보좌하고 민에게는 도덕을 교육하여 물질적 재화를 공급"받는 자신의 처지가 여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의 계급의식의 소산만은 아니다. 계급모순을 기초로 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반영"인 것이다.

장자의 사상은 "구질서에서 신질서로 개편되어 가는 과정에서 소외된 일군의 몰락귀족, 소사유 농민 등 일종의 자유민 계층의 현실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사상에서 민은 대상이 아니다. 장자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인의와 같은 도덕이념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삶의 욕구로서의 본성이 객관적 필연성인 상황[시명(時命)]에 부합되도록 하는 것이다." 장자의 이러한 주장은 일견 절대적인 것을 부정하고 현실상황에 따른 상대성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시대상황과 처한 입장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도덕이념을 절대화하여 그것을 백성에게 강요하는 허위의식의 지배층"의 사상과 태도인 것이다. 장자의 이러한 생각이 가장 잘 집약된 말은 "도는 없는 곳이 없다"는 도편재설(道遍在說)이다. 이는 "도가 구체적 현상을 초월해 있는 어떤 근원자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객관 사물에 내재하는 보편적 법칙"임을 의미한다. 이의 구체적인 성격은 주(周), 편(偏), 함(咸)의 세 단어로써 규정할 수 있는데, 각각은 "보편공통성", "보편평등성", "보편타당성"을 뜻한다. 장자는 도의 편재와 그에 따른 상황유연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의 한계는 계급적 한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 사상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소생산자 계층의 첨예한 비판의식은 그들이 지니는 계급적 기반과 역량으로는 현실을 개혁할 수 없었다는 한계성 때문에 결국 현실에는 소극적이면서도 개인의 정신적 자유에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장자의 정신적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자연과 사회의 객관필연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목적을 지니고 의식적으로 개조.변혁하는 실천활동을 전개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장자는 물론 노자의 사상, 즉 도가 일반의 사상을 읽을때 느껴지는 개운함과 일종의 허전함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묵자는 유가나 도가와 달리 중국의 역사 속에서 급속하게 소멸했다. 그 까닭은 "유교가 한대 이후 봉건 왕조의 체제이념이 되어 정통사상의 지위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유가의 의식기반인 종족의식을 거부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묵가의 사상이 이단으로 배척되었다는 데 있다… 진한 이후 중앙집권 봉건통일왕조 체제가 확립된 후로 존립의 터전을 잃었던 것이다." 묵가 소멸의 주된 원인에서 우리는 묵가 사상의 성립과정과 핵심을 엿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전국시대는 신흥지주계층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 "질서에서 소외된 대중들은 대부분 정치참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경제적 이익도 수탈당하였다. 도시의 소수 수공업 생산자 중심의 묵가는 이러한 소외대중의 입장에서 정치참여 기회의 균등과 경제적 이익의 균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당위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전쟁을 부정[非攻]하고 절용주의[節葬, 節用, 非樂]를 주창하였다. 그런데 유가는 음악을 중시하고 장례를 후히 치를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렇게 보면 한 사회계층의 관점에서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제거되는 것이 다른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 될 수 있기도 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유가와 묵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립하였다. "유가는 묵가가 지녔던 개인적 신의를 기초로 하는 '협(俠)'의 정신보다는 귀족 중심의 종법사회에서 유래하는 가족도덕의 실천을 중시"하였는데, 이는 종족적 사상기반과 소사유수공업자 중심의 공리적 계약관계라는 사상기반의 충돌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자를 살펴보면 그는 "당시 강화되어가던 군주의 권력, 중국의 통일 전망이라는 현실을 반영해서 예를 실천하는 군주를 통해 민생의 안정과 계층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안정된 사회의 질서를 바랐지만 권력이란 언제나 백성에 대한 억압이 본질이고 따라서 그의 사회적 분별에 의한 질서구도도 역사적으로 결국은 억압의 구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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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책 몇 권”

[...] 윤리적 행위의 핵심이 추론(reasoning)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숙련된 행동(ethical expertise)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과 “우리에게는 미리 만들어진 [...]

der Geist » disciplinary Etika added these pithy words on Feb 20 10 at 12:32am

[...] 간절히 필요하였다.” “당시의 지식인 집단인 제자백가 사상가들은 처한 입장에 따라 시대를 달리 진단하였다. 진단한 내용이 달랐으므로 당연히 처방의 내용도 [...]

der Geist » d’ou il parle added these pithy words on Feb 20 10 at 8:32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