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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 배우기, 글쓰기

(12 posts)
  • Started 4 months ago by 강유원
  • Latest reply from 강유원
  1. 강유원
    Member

    훌륭한 학생들은 밤에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부를 합니다. 이것저것 온갖 것을 읽습니다. 문장 하나를 읽으면서도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단어 하나를 해석하면서도 사전에 나오는 모든 뜻을 참조하여 읽어봅니다. 해당 텍스트에만 머물지 않고 그 텍스트와 관련이 된다 싶은 외부 텍스트들을 샅샅이 끌어오는 민감한 촉수를 발휘합니다. 그런 다음 그 모든 것을 앞에 두고 이제부터는 기가막힌 해석들을 창조해냅니다. 고작 석사논문을 쓰면서 석사(碩士)의 석자가 석학(碩學)의 석자와 같다하여 방대한 문헌에서 가져온 가지각색의 해석을 다 나열한 다음 그것들 각각에 다시 기나긴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A4용지 30매면 충분할(또는 더 쓰면 욕먹을) 논문을 무려 300매까지 쓰기도 합니다.

    논문의 제목 역시 거창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헤겔 법철학의 재정립을 위한 변증법적 연구', 이런 식의 석학스러운 제목을 내겁니다. 제목이 이러하니 목차도 그 수준을 가집니다. '서론: 근대적 상황 속에서의 헤겔 법철학의 문제의식의 정위(定位), 제1장: 칸트에 의한 근대철학의 역사적 전복, 제2장: 칸트와 루소의 변증법적 통일과 새로운 시도로서의 헤겔 법철학', 이런 식입니다. 여기에 결론으로 '헤겔 법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지양과 마르크스의 재전유 및 21세기 철학의 재정립을 향하여'까지 붙여지고 참고문헌 목록 200권쯤(이쯤 되면 참고문헌 목록이 아니라 소장도서 목록일 겁니다) 들어가면 화룡점정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 내버려두면 석사과정 다니면서 1,000페이지 짜리 책이라도 쓸 기세입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낸 가상 상황이 아닙니다. 아주 자주 발견되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헤겔의 정신현상학으로 석사논문을 쓰겠다는 이가 있었는데 실제로 이와 유사한 제목과 목차를 가지고 지도교수에게 가져와서 내놓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지도하기 어려우니 독일로 가게나'입니다.

    도대체 지도교수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물론 제정신 아닌 지도교수들은 이런 석학스러운 논문을 환영하면서 함께 상상력 놀이를 하면서 즐기기도 합니다)? 학생이 기껏 열심히 해왔는데 매정하게 그 많은 자료들을 불필요한 것이라 말하면서 무시하는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상상력 훈련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텍스트를 텍스트 안에 머물면서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학부과정을 공부하는 학생은 입문서 등을 읽으면서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의 대강의 범위를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석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주어진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정리하는 것이 목표여야 하며,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기존의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하나 정도' 덧붙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히 정리하고 읽은 다음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면 그걸 가지고 토론의 자료로 삼을 수 있지 않는가.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학생과 선생의 갈등이 시작합니다. 과정을 좀 풀어서 보면 이렇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은 뭔가를 잔뜩 읽어서 짊어지고 갑니다. <<정신현상학>>을 강독할 경우 선생은 가방에서 호프마이스터판 원전 한 권만 달랑 꺼내는데 학생은 배낭에서 원전(그것도 여러 판본으로 준비합니다. 이를테면 과거 그 학생은 교재인 호프마이스터 판은 물론 주어캄프 판, 게잠멜테 베르케 판과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글로크너 판까지 가지고 다녔습니다. 선생의 박사논문이 글로크너 판을 참조했기 때문에 그걸 참조해야 한다는 괴기스러운 이유에서였습니다)과 이뽈리트의 <<정신현상학의 구조>> 불어판, 영역본, 한국어본은 물론 기타 그때 그때 자신이 필요하다 싶은 '레퍼런스'들을 가지고 옵니다. 선생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대다수의 것을 불필요하다고 쳐냅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기도 합니다. 학생은 선생을 욕합니다. 토론은 물론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선생을 욕합니다. 선생 자격이나 있냐고 힐난을 합니다. 선생이 원전의 판본을 다 가지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궁시렁거립니다. '레퍼런스'도 안읽는다고 헐뜯는 건 당연한 일일겁니다.

    이런 학생은 학생이면서도 학생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도'하는 스터디 그룹이 꼭 있습니다. 스터디 그룹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세미나까지 합니다. 스터디 지도하고 세미나 하느라 강독 준비를 못해옵니다. 선생이 '읽고 번역해보라'하면 번역은 하지 않고 해석을 합니다. '이렇게 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 제가 여기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묻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지도와 세미나에 바쁘고 자신의 해석을 안출해내는 일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번역도 안합니다. 번역은 하찮은 일이라면서 깔봅니다. 자신이 지도하는 스터디 그룹 사람들 앞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는 시간이 판단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경외에 찬 시선을 즐기기도 할 것입니다.

    선생은 말합니다. 일단 주어진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꼼꼼히 읽어오라, 그러면 그 다음에 할 일을 말해주겠다, 학생이 이 방향으로 읽겠다고 고집을 한다면 말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학생은 전체의 대강이 무엇인지,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다고 전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울 수 있습니다.

    선생은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요약만 해올 것', 이렇게 명령합니다. 훌륭한 학생이 아닌 충실한 학생은 텍스트에 있는 단어들만을 사용하여 요약만 합니다. 선생은 그것을 읽고 잘 요약했는지 판단합니다.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 요약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도 하고 의문 부호를 남겨서 다시 요약할 것을 재촉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길게 요약되어 있으면 줄일 것을 명령합니다. 학생은 가차없이 줄여야 합니다. 줄이다보면 쓸데없는 말들이 중언부언들어가 있음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쓰라'는 명령을 따르기 싫으면 떠나면 됩니다. 세상에 선생은 많습니다.

    어쨌든 요약이 완성되면, 선생은 그것을 바탕으로 더 공부할 것을 다시 명령합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더 공부할 것'이 아니라, '이 부분에 관하여 이 책과 저 책만을 참조하여 어느 정도의 분량으로 정리할 것', 이런 식으로 명령합니다. 학생은 그 명령에 따라서 다시 공부를 합니다. 학생은 최종 결과가 무엇이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중심으로 토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복종하면서 따라갑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논문은 학생이 쓴 것이라기 보다는 학생의 손을 빌려 선생이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지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의력을 말합니다. 학문 세계에서의 창의력은 그런 지도로는 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창의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창의력은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이 하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애초에 선생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행정적 절차 상의 도장 하나 받기 위해 지도교수 신청을 했을 뿐입니다. 겉으로는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방법을 고집합니다. 그런 사람은 '독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신의 해석과 자신의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학문의 참다운 고장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Posted 2009-09-14 02:44:33 #
  2. marishin
    Member

    말이 나온 김에, ‘공부하기, 배우기, 글쓰기’과 밀접하게 관련된 ‘글(책)읽기’에 대해서 언급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책읽기 전 준비 방법
    - 책읽기의 대전제는 먼저 그 책의 갈래와 맥락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게 제 주장입니다. (그리고 갈래와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독서 과정은 ‘상상력’ 동원하지 말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읽는다.)

    구체적인 방법
    1. 저자 소개를 읽어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데 관심이 많은 학자인지 파악한다.
    2. 책의 목차를 꼼꼼히 읽고, 이 책이 다루는 범위를 머리 속에 집어넣습니다.
    3. 저자의 머릿말을 정확하게 읽음으로써, 이 책의 성격과 목표를 이해한다.
    4. 번역서라면 역자 후기를 읽되, 역자가 관련 분야 전문가라면 저자의 머릿말을 기억하면서 약간 ‘비판적’으로 읽는다. 역자가 비전문가라면 저자의 머릿말을 ‘잘’ 기억하면서 꽤 ‘비판적’으로 읽는다.
    5. 서론 또는 제1장을 꼼꼼히 읽는다.

    (이렇게 했는데도, 이 책의 범위와 맥락이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두가지다. 1. 저자가 엉터리여서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책을 썼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 2. 현재 내 지식의 범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어느쪽이든 지금 읽어봐야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일단은, 마음 편하게 저자가 엉터리라고 생각해두고 넘어가자^^)

    책 읽기의 준비 단계에 대한 실천적인 논의를 촉발하자는 차원에서 써봤습니다. ‘비판적 지적’(‘근거없는 비난’만 아니라면) 대환영입니다.

    Posted 2009-09-14 17:52:41 #
  3. 오늘 하교를 하며 버스 안에서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 미천한 지식으로 생각컨대, 전 자꾸만 '쇼펜하우어'와 '헤겔'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싸가지가 없"다는 것도 '오랜만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철학사에서 비교적 "상상"을 많이 한 축에 속할 철학자들을 접함으로써 '철학'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파스칼, 쇼펜하우어, 비트겐슈타인이 그들입니다(제가 그들을 이해했느냐란 질문에는 아니라고 해야할 것입니다만).

    전 제가 안 그런 줄 알았는데 텍스트가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텍스트가 (철학) 공부에 있어 최우선이 되지 않으며, "텍스트 이해"가 철학 공부의 최우선점이 되어야 하는지에도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세상이라는 책 읽기"란 말이 전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인류 최초의 텍스트도 '세계읽기'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또한, 수개월 전 제가 갖고 있는 책들이 '짜증'나서 '돈이 되지 않는' 백여권의 책들을 중고책방에 12만원에 넘긴 적도 있었습니다. 에누리 한번 안 했습니다. 그 돈으로 공장에 취직할 밑천을 마련했었습니다. 책 없앤 게 벌써 두번째입니다. 첫째번에는 저희 집 시골마당에서 '찢'어서, 태워없앴었습니다.

    전 위 강유원 님의 글을 이해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저와 상종하기도 싫을지 모르지만, 저도 약 5년 정도 독학하면서, 왜 진작 이런 '튜터'를 못 만났을까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제게 '대단'했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무리 멋져보여도 '전통'이 전통인 이유가 있습니다. 관습이 아무리 엿같아도 살다보면 그 하나하나의 의미에 고개가 숙여질 때가 있습니다.

    글이 길어지는군요. 그냥 그렇습니다.

    Posted 2009-09-14 20:40:18 #
  4. scv
    Member

    저희가 위대한 학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철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등등)도 다 강유원선생님 말씀대로 공부를 했나요? 아니면, 지금 우리가 뛰어난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했나요? 질문이 좀 포괄적이지만,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도 정작 그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공부를 해서 그런 저작을 생산해 낸 건지에 대해선 배경을 잘 몰라서 여쭈어 봅니다.

    그리고 글 잘 읽었습니다. 강유원선생님같은 뛰어난 학자를 알게 되어서 저도 위에 분 처럼 기쁩니다.

    Posted 2009-09-14 20:49:00 #
  5. marishin
    Member

    parasite님, 정말 미안하지만 답답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잘 모르지만, 파스칼은 수학자입니다. 누구보다 논리에 투철한 사람입니다. 수학적 논리에도 물론 상상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그건 parasite님이 말하는 상상과는 거리가 큰 것 같습니다.

    또 비트겐슈타인의 첫번째 저서인 <논리철학논고>가 비록 잠언집과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 책의 그 유명한 마지막 구절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입니다. parasite님이 말하는 의미의 ‘상상’을 많이 한 철학자가 첫번째 저서 마지막 문장을 저렇게 쓰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 비트겐슈타인의 필생의 과제는 ‘왜 말도 안되는 형이상학이라는 질병에 철학이 오염됐는가? 그건 언어가 잘못되어서이고, 언어를 정화하면 이 질병에서 벗어날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집중적으로 고민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언어의 이해’를 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텍스트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상상’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어깨 너머로 어설프게 전해들은 것밖에 없는 제가 이렇게 무리해서 나서는 것은, 정말 안타까워서 입니다. parasite님이 그동안 공부하신 걸 깡그리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저 같은 다른 초짜들까지 혼란에 빠뜨리는 ‘글’만이라도 자제해주십사 하는 겁니다.

    Posted 2009-09-14 22:30:40 #
  6. marishin/ 제가 읽은 파스칼은 <<빵세>>라는 철학서였고, 비트겐슈타인을 언급한 것은 그가 기존 전통의 '텍스트'를 멀리했다는 의미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파스칼은 당시 주류철학인 데카르트에 저항하고,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방에 '(기존)철학책'들을 놓아두는 것조차 싫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평전을 읽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쇼펜하워와 당대철학의 관계는 잘 아실 겁니다. 제가 그들을 이해한 것은 아니라 말씀드렸습니다. '상상'이란 용어가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을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모습을 드려 죄송합니다. 자꾸 용어'선택'를 통한 의미전달에 제가 애를 먹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글을 짧게 쓰면서 요점을 명확히 전달'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다른 분들께도 사과드립니다.

    Posted 2009-09-14 23:00:25 #
  7. 강유원
    Member

    scv/ "경제학자 사회학자"는 어떻게 공부했는지 모르겠지만 철학자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그들의 저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보면 소크라테스와 그의 학생들은 대화를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대화가 그냥 아무 것이나 내키는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철저하게 개념을 규정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더이상 말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도록 질문을 하고, 그렇게 해서 무지가 확인되면 그때부터야 비로소 뭔가를 낳아놓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플라톤 역시 그의 아카데미아에서 대화를 통해서 학생들과 공부를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대화편 자체가 교재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제가 쓴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39페이지부터 42페이지를 참조하시거나 좀 더 전문적인 것을 알고 싶으시면 토마스 알렉산더 슬레작의 <<플라톤 읽기>>[9788972181415]를 참조하십시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본격적인 강의록인데 그의 저작들 도입부는 거의 대부분 자신에 선행하는 학자들의 논의를 요약하고 각각에 대한 비판을 수행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널리 통용되는 논문 형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러한 요약이 기록을 남기지 않은 학자들의 학설을 알게하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짐작하건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학원에서는 일단 선행하는 학자들에 대해 공부를 한 다음 회랑을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듯합니다.

    중세에 들어오면 철저한 주석이 공부의 핵심이 됩니다. 이명훈 선생님께서 아리스토텔레스 '영혼론' 강독 올리신 포스트( http://allestelle.net/?p=758 )를 보면 그 책에 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석(Commentary on Aristotle's De anima / St. Thomas Aquinas)을 볼 수 있습니다. 중세의 공부법에 관해서는 자크 르 고프의 <<중세의 지식인들>>[9788980380404]을 참조하십시오. 중세에는 주석의 공부법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비주의의 방식도 있습니다. 이런 공부 방법들끼리의 대립은 수도원 교단의 대립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이에 관한 재미있는 참고서는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인데, 소설적인 장치때문에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제가 쓴 해설서 <<장미의 이름 읽기>>를 참조하셔도 무방합니다.

    근대에 들어서면 공부법이 달라집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보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학문의 무용성을 논하는 부분에 이어 수학의 확실성과 명증성을 거론합니다. 여기서 전통적인 공부방법이 일변합니다. 그것은 이제 엄밀한 학으로서의 수학에서 방법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철학은 수학적 조류와 전통적인 방법을 이어받는 조류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헤겔과 같은 독일관념론 철학자은 '철학은 철학사'라고 할 정도로 철학사를 중시했고 칸트는 상대적으로 철학사를 무시했으나 그렇다고해서 선행하는 철학자들의 견해를 전혀 모르고 지낸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흄을 읽고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는 말들을 하는데 사람들은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흄을 읽었다'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의 철학자들 역시 선행하는 학자들의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안출한다는 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예를 둘 들자면 푸코는 사상사가이며, 들뢰즈는 철학사가입니다.

    ***
    그리고 저는 "뛰어난 학자"가 아닙니다. 뛰어난 학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Posted 2009-09-14 23:03:13 #
  8. 강유원
    Member

    marishin/ 비트겐슈타인이나 분석철학자들이 얼마나 상상을 멀리했는지, 또는 엄밀한 분석을 중시했는지는 그 분야를 공부하신 김영건 선생의 책 <<동양철학에 관한 분석적 비판>>[9788996056157]을 참조하시면 적절할 것입니다.

    이 책 읽고나서 저는 '헛소리'를 더욱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Posted 2009-09-15 00:56:27 #
  9. marishin
    Member

    강유원/그 책 까먹고 있었습니다. “어떤 책을 하나 봐야 하는데, 그게 뭐였더라”라고 생각하며 찜찜하고 있던 차에, 일깨워주시니 고맙습니다.

    Posted 2009-09-15 10:35:44 #
  10. titi
    Member

    강유원님이 전달하고자하는 메세지는
    '의사소통-글이든 토론이든-이 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인만큼
    언어를 능숙하게 잘 다루는 것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술이다'라는 것 같습니다.
    요약을 잘하는 것은 그 필수적 기술 중 하나인 것이겠죠.
    요약의 좋은 예가
    '이것저것 -- 2009. 9.
    4.KBS, <시사기획 쌈>, 2009. 9. 1
    '최초 공개 외환위기 미 비밀문서 -- IMF와 '트로이 목마', 내용정리'에
    잘 나와있는 것 같네요.
    프로그램을 보진 않았지만 매우 훌륭한 요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을 하나 덧붙이자면, 그렇게 언어를 잘 다루는 기술은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충분히 숙달되도록 최우선순위로 교육과정이 짜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시민의 덕성이 아닐까요?

    Posted 2009-09-15 21:21:16 #
  11. 한재연
    Member

    질문입니다.

    1. 철학자와 철학사가는 어떻게 다른가요? (윗글에서 들뢰즈를 '철학사가'라고 말씀하셔서요.)

    2. 사상사가와 철학사가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건 사상과 철학이 어떻게 다른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윗글에서 둘을 구분하셔서요.)

    3. 철학자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새로운 철학 개념을 만들어내야 하나요?

    Posted 2009-09-15 21:47:48 #
  12. 강유원
    Member

    titi/ 바로 그런 점에서 수사학(rhetoric)은 중요한 학과였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그걸 공부하려고 합니다.

    한재연/
    우선 철학이 무엇인가에 따라 '철학자'로 불리는 사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철학을 연구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철학은 이것이다'에 관하여 합의된 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것은 결국 대중의 수용 문제라고 하기도 하고, 지식 권력의 문제라고도 합니다. 가장 거칠게 정의하자면 '인간과 세계의 근본원리에 관한 일관성있는 통찰을 제시한 사람'을 철학자로 부를 수 있겠습니다. 철학자가 반드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롭게 보는 방식까지는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철학사가들마다 분류 범주가 다르기는 하지만 철학사는 대체로 철학자들의 사상을 역사적 순서로 다루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사상사는 철학이론에 국한하지 않고 철학적 사유가 등장한 배경이나 시대적인 영향력까지도 포괄하는 것입니다.

    Posted 2009-09-15 23:3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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