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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와 대학원생

(4 posts)
  1. surveyor
    Member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강선생님은 교수의 ‘지도’란 학생의 ‘복종’에 바탕을 둔 ‘훈련’이어야 한다는 의미의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강선생님과 지도교수님의 관계는 독일 식 도제교육의 전통에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러한 도제교육 속에서 참다운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대학원에서의 공부란 지도교수에게 ‘복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있는 미국의 대학교수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미국교수들은 말합니다. “나는 너를 ‘동료’라고 생각한다. 굳이 내가 연구하는 분야를 네가 똑같이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너는 너만의 연구주제를 가지고 공부를 해라. 그러면 우리가 ‘동료’로서 네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비판적 코멘트를 해 줄 것이다.”

    “학생이 뭐가 중요한지 어떻게 알아. 칸트 읽으라면 읽고 헤겔 읽으라면 읽는 거지” 라고 말했던 강선생님의 방침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러한 주장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수라해도 모든 분야의 만물박사가 아니다. 따라서 박사과정학생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특정분야를 그 학생만큼 지도교수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도제교육이 되려면 지도교수가 깊이 정통하고 있는 한 분야만을 박사과정학생도 연구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후의 학문적 자립성에도 학문의 다양성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지도교수는 박사과정학생이 연구하는 연구주제의 내용을 미리 마스터하고 있는 숙련자의 입장에서 연구의 내용자체를 지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이 향후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도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립할 수 있도록 해당학문분과의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연구과정을 지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생겨났습니다.

    1. 도제교육은 여전히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유효한 것인가?

    2. “인문사회계열의 도제교육은 자칫 학문적 아류를 확대재생산할 우려”가 있고, “집단이기주의를 낳고 밥그릇싸움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4200140

    3. 스승의 암묵지를 배우는 것이 도제교육의 목표인가? http://euirae.egloos.com/2441755

    4. 박사과정학생은 지도교수가 정통한 분야만을 연구해야 하는 것인가? 역으로, 지도교수는 자신이 정통한 분야만을 학생에게 지도해야 하는 것인가?

    5. 만약, 연구분야를 직접 선정하고 그 분야에 대한 공부도 혼자 해낸다면 결국 그게 ‘독학’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조언'을 청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도제적인 훈련을 받진 않아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만으로 지도교수의 의미는 충분한 것인가?

    6. 논문지도교수들의 이상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도제관계 속에서 학문적 ‘훈련’을 제공해야 하는가. 아니면 학생의 자율적 연구를 장려하면서 연구에 방향성만을 검토해주는 ‘가이드’의 역할에 그쳐야 하는가. ‘스승’으로서의 지도교수와 ‘동료’로서의 지도교수는 어느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이것은 양립불가능한 것인가?

    7. 도제교육속에서 학위를 받으면 박사학위 이후 혼자 힘으로 연구주제를 수립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 즉 자립적인 연구가 어렵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등등.

    강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마치 ‘제다이’와도 같이 지도교수로부터 학문의 정수를 ‘하사’ 받는 것이 대학원 생활이라고 생각해왔던 저에게 ‘복종’보다는 ‘자율’에 더 중요성을 두는 현재의 대학분위기는 논문지도교수들과 대학원생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Posted 2010-02-23 17:47:00 #
  2. 강유원
    Member

    글을 읽고서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질문의 서두에 쓰신 미합중국에서의 경우에 대해서는 뭐라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바도 없기 때문에(또는 누가 말해도 귀담아 듣지 않아서 기억을 잘 못합니다^^) 어떤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또한 제가 공부한 방식이 독일식인지 프랑스식인지도 잘 모르고 어떤 식으로 규정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본 바가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다른 사람들은 지도교수와 어떤 관계 속에서 공부하였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그런 까닭에 잘 알지 못합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먼저 질문하신 것들에 대한 제 생각을 간단하게나마 적어보겠습니다.

    1.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반에 대해 도제교육의 유효성을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경우도 분야마다, 교수마다, 학생마다 선호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은 아래의 물음들에 대해 답하면서 조금은 드러나리라 봅니다.

    2. 링크하신 글의 필자는 도제교육의 순기능까지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학생이 "도구화 내지 노예화"되는 것은 교수의 "권력병"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필자는 "의대나 공대 등 기술을 전수하는 교육에서 도제교육은 필수"라고 말합니다. 저는 철학 텍스트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글로써 전달하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기술을 전수받으려면 도제교육이 필요하다 봅니다. 권력병을 가진 교수가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듯합니다.

    3. 링크하신 글에서 제시하는 도제교육의 목표 중의 하나는 "효과적인 암묵지의 전달 과정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에 수긍합니다. 그렇지만 그 글의 필자가 지적하듯이 "학생들의 노동착취"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2에서 제기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교수의 자질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4. 5. 6. 박사과정 학생과 지도교수의 관계는 참으로 미묘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는지 잘 모르므로 저의 경험만 가지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저는 학부 3학년때부터 제 선생님의 수업을 빠짐없이 들었고 제 선생님께서는 제가 가진 관심사와 능력 등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어떤 주제에 대해 논문을 쓰고자 할 때 그것에 대해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암묵적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제 선생님은 독일관념론 철학을 전공하셨지만 저는 석사학위과정에서 영국 정치철학을 전공했습니다. 실천철학이라는 범위도 그렇고 영국철학이라는 영역도 그렇고 제 선생님의 전공영역과 합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걸 보면 제 선생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것은 텍스트를 면밀하게 읽는 법, 글쓰는 법, 체계적으로 논증하는 법 등입니다. 저는 전공영역이나 주제를 놓고 '이건 안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하고자하는 것을 철저하게 선생님께 글로써 설득해야 했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과정에 들어갔을때 영국철학에서 독일철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은 선생님의 권유에 의해서였지만 강제는 없었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그렇게 가는 것이 학문적인 체계에 따르는 것이라는 확신이 스스로에게도 있었으며 호기심도 강하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도 제가 정한 주제에 대해 선생님께서 안된다고 하신 기억은 없습니다. '잘 쓰게'라는 말을 들었고 잘 써야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짧은 말이 더 무섭습니다만. 그런데 막상 지내놓고나니 제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들어섰을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선생님께서 놓아둔 길을 따라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선생님께서 제 관심사와 능력을 잘 알고 계셨다고 여겼기 때문에 별다른 이의가 생기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노동착취는 전혀 없었습니다. 복사물 한 장도 스스로 하신 분이었고, 교수 연구실에 선생님의 개인 물건도 없어서 제가 딱히 정리해야 할 것도 없었습니다. 강의가 있으실 때만 학교에 나오셔서 강의 끝나시면 곧바로 퇴근하셨습니다. 퇴직하실 때도 대학원 마지막 수업 끝나고 들고오신 책가방 싸서 가시는 걸로 끝났으니 댁으로 책 나를 일도 없었습니다. 노동력을 제공한 경우라면 커피 타드린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학과장을 어쩔 수 없이 오래 하신 것이 선생님이 누리신 유일한 권력이었고, 금전적인 착취는 전혀 없었습니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항상 선생님께서 제 밥값까지 계산하셨고(퇴직하신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선생님을 만나 식사를 할 때면 "학생이 무슨 돈이 있나" 하시면서 계산을 하시려 합니다. 그럴 때면 좀 이상하고 그렇습니다^^), 학교 밖에서 따로 만나는 일이래야 한 학기에 두번 등산가는 건데 선생님 잡수실 오이까지 싸가지고 오셔서 제 돈 들어갈 일은 없었습니다. 하산 후에 고기먹으러 가도 선생님께서 계산하셨으니 그때는 오랫만에 배불리 먹곤했습니다.

    7. 배우는 과정에서 어설프게 배우거나 노동을 착취당하기만 했거나 권력형 교수 밑에 있었다면 자립적인 연구가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만 '배운다'는 것에는 말 그대로 문제설정, 해결능력까지 배운다는 것이 포함되리라 봅니다. 저는 1987년에 석사학위과정에 들어가서 선생님께서 퇴직하신 1998년까지 배웠습니다. 제가 1993년에 박사학위를 받고나니 선생님께서 '이제 혼자서 공부할 능력을 갖추었으니 열심히 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알긴 뭘 압니까"라면서 대학원 수업에 계속 갔었습니다. 이건 각자의 취향에 달린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때는 말 그대로 배우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중에 2, 3년 정도 공부를 그만 둔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때 배운 것을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도식적으로 말해보자면 학생 10년, 자습 10년을 해온 셈입니다. 이 자습 10년 동안 제가 공부 목표로 삼은 것은 예전 게시판에 적어둔 게 있습니다. 그 글은 "학적 탐구의 다섯가지 영역"(2004-05-14)이라는 것인데, 그걸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학'은 어떤 입장에 서서 세계를 보는 것이다. 학이 세계 자체를 포괄한다는 것은 오만이다. 학의 성과는 텍스트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학의 출발점은 '텍스트 읽기'이다. 텍스트를 읽는 힘은 위대한 문헌들을, 다른 텍스트들을 참조하여 주석을 달아가면서 읽는 데서 길러진다. -- 고전 주해

    텍스트는 컨텍스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두번째로 해야 할 일은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를 면밀하게 살피는 일이다. 이로써 텍스트는 즉자적 자체에서 벗어나 역사적 세계 속에서 조망된다. --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상호 참조

    오늘은 과거의 축적이다. 따라서 역사적 참조가 없는 현재에 대한 탐구는 무의미하다. 역사를 참조하되 그 기반에 초점을 두어 살펴야 한다. 이러한 탐구의 성과는 역동적 구체적 오늘을 추상화하여 철학적 관조에 이르는 바탕이 된다. -- 역사철학적 탐구

    과거를 참조하여 오늘날을 탐구하였으면 본격적인 현재 탐구에 착수하여야 한다. 오늘의 당면한 현실은 자본주의 체제이다. 이것을 간과한 모든 학은 텍스트 유희에 불과하다. -- 정치경제학적 통찰

    덧붙여 현대사회의 이해를 위한 다양한 분야의 독서가 요구된다. -- 폭넓은 독서.

    * 이 다섯가지는 학적인 탐구와만 관련될 뿐 학자의 인격이나 인생살이의 깊이와는 무관하다.
    http://www.allestelle.net/bbs/view.php?id=www_bbs&no=824

    이 영역에서 제가 학생 시절에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첫번째인 "고전 주해"입니다. 나머지 것들은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쨌든 제가 자습 10년 동안 해온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습 10년이 지나가는 요즘에는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지금까지 해온 것과 전혀 다른 것은 아닐테니 대강 가닥은 잡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합 30년쯤 지나면 뭔가 아주 미약하나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Posted 2010-02-25 01:50:12 #
  3. surveyor
    Member

    말씀들으니 이제까지 제가 그냥 '받아먹으려'고만 했던 건 아닌지 먼저 반성이 됩니다 .
    사실 제가 있는 곳은 학생들을 '방임'하는 분위기라 그것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Empower 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기는 합니다만.
    이곳 대학원은 '노동착취'와 관해서는 개인의 성품문제를 떠나서 규정으로 잘 정해져 있습니다. 조교들의 노동시간이나 노동업무량이 계약상으로 정해져 있고, 교수들 스스로가 수직적으로 명령하는 행위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군가 불만을 제기할 경우 생길 분쟁 역시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노동착취는 없지만 그 만큼 책임감도 덜 한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앞으로 어떻게 교수와의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지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을 네 가지 기본방침으로 삼아야 겠습니다.

    1. 자신의 관심사와 능력을 최대한 표출할 것.

    2. 암묵적인 안내를 포착할 것.

    3. 철저하게 글로써 설득할 것.

    4. 글쓰기기술, 문제설정, 해결능력은 도제적으로 배울 것.

    이 중에 무엇보다도 '글로써 설득하라.'는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그 동안 말로써만 설득하려 해놓고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이 안됬다고 속상해 했던 것 같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학문하는 것에 대한 고민들도 있지만 그것은 일단 차치하고, '글'로써 지도교수를 많이 귀찮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무엇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무엇을 '도제'적으로 배워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Posted 2010-02-25 10:46:02 #
  4. 좋은 글들 감사드립니다. 프린트 해서 읽었습니다.

    Posted 2010-03-01 11:4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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