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에서 지식인에 관해 언급한 부분입니다.
"세속의 재발견 : 『군주론』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이 재발견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고전은 르네상스 이전인 중세에 이미 읽혀졌고, 체계로 수용되어 그 바탕이 되었으며, 혹은 부정되고 잊혀졌다. ‘흑사병’으로 상징되는, 중세의 가을에 닥친 고통은 사람들이 차분하게 앉아서 고전을 음미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신비주의로 도피했고, 현실 정치 세계의 끝없는 분열은 이것을 가속화시켰다. 르네상스는 이것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르네상스가 다시 고전을 들추어 보았다 해도, 깊은 반성적 사색을 거쳐 철학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르네상스는 오로지 새롭게 발견된 인간을 즐기던 시대였으며, 그에 따라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보다는 조각과 건축, 회화라는 형상물에 탐닉하였다. 르네상스의 지식인들 역시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 해볼 수 없는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궁정 지식인, 권력에 봉사하는 예술가, 기술자로 살아간다.
르네상스에 재생된 고전은 고전 본래의 장엄미로 표출된다. 미켈란젤로의 고전주의는 이러한 장엄미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르네상스의 역동적 현실 세계는 미켈란젤로의 고전주의가 지속될 수 없는 여건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곧 라파엘로의 여성미에게 자리를 내준다. 너무도 짧은 시간에 고전주의는 해체되어 현실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낭만성으로 전환되어버린 것이다.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에서는 통일에 대한 열망은 있었으나 그것을 실현할 정치적 힘은 등장하지 않았고, 도시와 공국들은 절대적 패권의 기약 없이 싸웠다. 고전주의는 수학적 이성이 세워 놓는 질서에 대한 신뢰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리스적 사색이 가진 힘은 바로 이러한 이성주의인데,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은 혼돈의 극치였다. 르네상스의 고전 읽기가 궁정 지식인의 즐거운 유희로 전락하고 미켈란젤로의 고전주의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사태였는지도 모른다.
르네상스의 첫 번째 지식인 유형은 고상한 인문주의자이다. 도시의 작업장에서 태어나 거기서 스스로를 연마했던 12세기 중세 지식인들과는 달리, 또 그나마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계속되는 논박을 벌이던 스콜라 철학의 박사들과도 달리, 그들은 귀족의 궁정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귀족의 후원 속에서 귀족의 비서가 된다. 그 자신, 귀족이 아닌데도, 귀족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귀족인 듯 착각하는 허위의식을 가지게 된다. 지식인은 본래 그가 정치적이건 아니건 귀족과 왕에게 호소한다. 귀족과 왕들을 비판함으로써 냉대를 받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들 대다수는 귀족과 왕의 시종으로 봉사하는 유기적 지식인의 삶을 살아간다. 르네상스의 궁정 지식인들 역시 유기적 지식인이다. 그들은 대중과의 접촉을 잃어버리고, 시끌시끌한 도시의 작업장을 벗어나 고요한 전원에 파묻힌다. 그리고 거기서 연약하지만 환상적인 질서를 찬미한다.
귀족들의 식객이 된 궁정 지식인에 이어 또 하나의 지식인 유형이 등장한다. 우리는 그들을 실용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데, 이들이야말로 르네상스의 정신, 즉 고전주의와 낭만성, 고상함과 실용성, 이상과 테크닉의 절묘한 혼합의 과도기적 정신의 충실한 현현이다. 다빈치의 회화 「모나리자」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보여준다. 눈 꼬리, 입 꼬리 등의 윤곽을 흐리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다채로운 표정을 가능케 하는 이 테크닉은 중세 회화에 나타나는 생경함을 없애면서 르네상스 회화의 완숙함을 드러낸다. 다빈치는 이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해서구사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회화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기법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회화에 구사된 테크닉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다빈치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테크니션의 자리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어 ‘techne’의 본래적인 뜻, 즉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이었으며,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우리는 그를 ‘두 세계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피렌체의 천재 브루넬레스키는 다빈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나아감은 그가 하나의 세계를 버리고 다른 하나의 세계가 요구하는 완벽한 테크니션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보면, 철저한 세속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아무리 현실 세계를 의식했다 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빈치, 브루넬레스키에게 있어 현실 세계는 여전히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절실하지 않은 대상 세계일 뿐이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라는 지식인에게는 현실이란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둘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 아니 다른 모든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고, 오로지 현실만이 당면한 이슈였다. 르네상스는 인문주의자, 고전주의자, 낭만주의자, 두 세계의 지식인 그리고 완벽한 엔지니어를 거쳐 드디어 지식인이라 부르기도 모호한 현실정치적(Realpolitik) 세속인을 창출해 놓은 것이다.
마키아벨리 역시 본질적으로 궁정 지식인이었다. 그 역시 지배자를 위한 이념과 실천 지침서, 즉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그였다. 그러나 그는 전원에 파묻혀 고요한 질서를 찬양하는 비현실적 궁정 지식인이 아니라, 분열과 반목, 침략과 방어라는 날것의 현장에서 동분서주했던 서기관이었다. 그의 텍스트들은 역사적 현실이라는 컨텍스트에 너무나 철저하게 밀착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그에 대한 텍스트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텍스트만 보아도 우리는 그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철저한 인식과 로마제국의 단순한 실천이라고 하는 서구의 전통 위에 서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가차 없는 솔직함으로써,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체사레 보르지아-라틴어 ‘카이사르’를 이탈리아어 식으로 발음하면 ‘체사레’이기도 하다-를 찬양함과 동시에 그의 리더십이 펼쳐지는 현실에 대해서도 냉혹한 분석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그들, 체사레와 마키아벨리의 목적은 이탈리아의 통일이었다. 중세의 가을에 이어지는 르네상스는, 앞서 말했듯이, 분열의 공간에서 낭만성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다른 지식인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역시 대립의 통일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쿠자누스가 신비주의 속에서, 중세적 방식으로 그 목적의 성취를 시도했다면, 마키아벨리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이성을 통해 철저한 세속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그것을 이룩하는 방도를 찾았다. 그의 잣대는 이것-현실에서 작동하는 냉혹한 이성-뿐이었다. 이것에 근거하면 선의는 무의미한 감정 낭비일 뿐이며, 도덕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군주론』은 바로 이러한 원리 위에서 쓰여진 현실 정치 지침서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군주론』은 ‘무장한 예언자’를 모토로 내세운 지도자론, 정권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법, 적을 다루는 방법, 신민을 정복하고 충성심을 유지하는 대책, 군대를 운용하는 전략과 전술로 가득 차 있다. 몇몇 도덕주의자들은 이 텍스트를 사악한 것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혼란한 현실은 사악한 것도 선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당면해서 극복해야 할 현실일 뿐이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도덕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위선이다. 차라리 컨텍스트가 철저히 반영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직한 지식인이며, 마키아벨리가 걸어간 길도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군주론』으로써 마키아벨리는 중세에 소실되었던(‘지금’ ‘이곳’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는) 그리스 영웅들이 보여주기도 했던 ‘실존성’이라고 하는 서구의 전통을 재생시키고 그것을 현실에 옮겨 놓는다. 이제 이 전통은 근대에서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정당화를 얻기 시작한다. 마키아벨리에 이어 근대인들은 국가가 불멸성을 보장해 주는 체제가 아님을 확고하게 깨닫고 철저한 계약의 규범을 세우고 그것을 내재화한다. 그런 점에서 『군주론』은 어설픈 중세를 확실히 정리하고 근대의 현실 정치 세계를 열어젖힌 고전이며, 오늘날에는 통용되는 매뉴얼로 받아들여진다."
Posted 2010-03-03 16:4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