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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통합적 사유를 위한 인문학</description>
	<pubDate>Wed, 21 Jul 2010 17:52:57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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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식인과 제왕(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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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1 Jul 2010 17:50:05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책읽기 20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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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0;&#60;식인과 제왕&#62;&#62;
1. &#034;순전히 생물학적으로만 말하면 대부분의 남성은 남아도는 존재이다. 버젤(Joseph Birdsell)이 말한 것처럼 한 집단의 출산율은 그 집단의 성인 남성의 수보다는 성인 여성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034;
2. &#034;남자아이에 대한 선호와 특별대우를 통해 인구증가를 규제하는 것은 자연의 힘에 대한 문화의 괄목할만한 &#039;승리&#039;이다. 부모가 낳은 아이를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직접 죽이도록 동기부여 하는 데는 매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lt;&lt;식인과 제왕&gt;&gt;</p>
<p>1. &#034;순전히 생물학적으로만 말하면 대부분의 남성은 남아도는 존재이다. 버젤(Joseph Birdsell)이 말한 것처럼 한 집단의 출산율은 그 집단의 성인 남성의 수보다는 성인 여성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034;<br />
2. &#034;남자아이에 대한 선호와 특별대우를 통해 인구증가를 규제하는 것은 자연의 힘에 대한 문화의 괄목할만한 &#039;승리&#039;이다. 부모가 낳은 아이를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직접 죽이도록 동기부여 하는 데는 매우 강력한 문화적인 힘이 필요하다. 더욱이 남자아이보다도 여자아이를 더 많이 죽인다든가 더 홀대하도록 하는 데는 더욱 더 강력한 문화적인 힘이 필요했다. 바로 전쟁이 그러한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었다.&#034;</p>
<p>Audio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7/Reading_20M_20100722.mp4">Reading_20M_20100722.mp4</a></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C%8B%9D%EC%9D%B8%EA%B3%BC+%EC%A0%9C%EC%99%95%283%29,+http://allestelle.net/?p=1657"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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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식인과 제왕(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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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4 Jul 2010 17:57:00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책읽기 20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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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0;&#60;식인과 제왕&#62;&#62;
1. &#034;낡은 빅토리아식 발전관&#8230; 문화발전을 보다 사실대로 설명하는 발전관&#034;
2. &#034;오늘날의 산업사회가 이룩한 이 물질적 풍요로움&#8230; 기복이 심한 한 곡선 위에 가장 최근에 불쑥 나온 거품과 같은 것은 아닐까?&#034;
Audio File Download: Reading_20M_20100705.mp3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lt;&lt;식인과 제왕&gt;&gt;</p>
<p>1. &#034;낡은 빅토리아식 발전관&#8230; 문화발전을 보다 사실대로 설명하는 발전관&#034;<br />
2. &#034;오늘날의 산업사회가 이룩한 이 물질적 풍요로움&#8230; 기복이 심한 한 곡선 위에 가장 최근에 불쑥 나온 거품과 같은 것은 아닐까?&#034;</p>
<p>Audio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7/Reading_20M_20100705.mp3">Reading_20M_20100705.mp3</a></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C%8B%9D%EC%9D%B8%EA%B3%BC+%EC%A0%9C%EC%99%95%282%29,+http://allestelle.net/?p=1655"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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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식인과 제왕(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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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7 Jun 2010 16:23:11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책읽기 20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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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마빈 해리스(지음), 정도영(옮김), &#60;&#60;식인과 제왕&#62;&#62;, 한길사, 2004. [9788935610587]
대전맹학교
아미쉬 공동체
버려진 곳들
이정전 블로그
&#034;아마도 국토해양부는 4대강 본류가 국가하천이므로 중앙정부의 소관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천 정비 사업은 수계별로, 강 유역별로 추진되어야 옳다. 이명박 정부가 노상 벤치마킹하는 선진국이 그렇게 한다. 선진국에서 중앙정부가 온 나라의 강을 홀까닥 뒤집어놓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4대강 사업이 미래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마빈 해리스(지음), 정도영(옮김), &lt;&lt;식인과 제왕&gt;&gt;, 한길사, 2004. [9788935610587]</strong></p>
<p><a href="http://www.djschool.sc.kr">대전맹학교</a></p>
<p><a href="http://www.clm.or.kr/technote/readr.cgi?board=simple&#038;y_number=19">아미쉬 공동체</a></p>
<p><a href="http://www.abandoned-places.com/links.htm">버려진 곳들</a></p>
<p><a href="http://jjrhee.net/62">이정전 블로그</a><br />
&#034;아마도 국토해양부는 4대강 본류가 국가하천이므로 중앙정부의 소관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천 정비 사업은 수계별로, 강 유역별로 추진되어야 옳다. 이명박 정부가 노상 벤치마킹하는 선진국이 그렇게 한다. 선진국에서 중앙정부가 온 나라의 강을 홀까닥 뒤집어놓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4대강 사업이 미래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물 공급도 수계별로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이루어짐이 원칙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정부 산하기관인 수자원공사가 물 공급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은 물 공급 문제를 아예 중앙정부에 일임한 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과거 지방자치단체들이 잘 이용하던 상수원들마저 폐쇄되는 형편이다.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034;우리 마을의 물은 우리 마을이 알아서 한다.&#034;는 원칙부터 지켜야 한다.&#034;</p>
<p>Audio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6/Reading_20M_20100628.mp3">Reading_20M_20100628.mp3</a></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C%8B%9D%EC%9D%B8%EA%B3%BC+%EC%A0%9C%EC%99%95%281%29,+http://allestelle.net/?p=1649"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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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3)</title>
		<link>http://allestelle.net/?p=164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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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9 Jun 2010 17:56:42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책읽기 20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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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0;&#60;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62;&#62;
&#034;&#039;근대&#039;에 있어서 시간.공간 그리고 신체를 둘러싼 질서는 자연성을 될 수 있는 한 배제하면서 인위성을 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034;
&#034;자연 속에서 일정한 유용 부분만으 골라서 이용하고 나머지는 내버리든지 가치가 낮은 것으로 경시하는 부분 추출과 분류의 논리를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039;잡초.잡목.잡곡&#039; 등과 같은 &#039;잡雜&#039;류. 원래의 자연생태계에 &#039;잡&#039;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을 리 없다. 이것은 오로지 인간이 유용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lt;&lt;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gt;&gt;</p>
<p>&#034;&#039;근대&#039;에 있어서 시간.공간 그리고 신체를 둘러싼 질서는 자연성을 될 수 있는 한 배제하면서 인위성을 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034;</p>
<p>&#034;자연 속에서 일정한 유용 부분만으 골라서 이용하고 나머지는 내버리든지 가치가 낮은 것으로 경시하는 부분 추출과 분류의 논리를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039;잡초.잡목.잡곡&#039; 등과 같은 &#039;잡雜&#039;류. 원래의 자연생태계에 &#039;잡&#039;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을 리 없다. 이것은 오로지 인간이 유용한 것을 골라내려고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범주일 뿐이다.&#034;</p>
<p>Audio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6/Reading_20M_20100620.mp3">Reading_20M_20100620.mp3</a></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C%9D%BC%EB%B3%B8%EC%A0%81+%EC%82%AC%ED%9A%8C%EC%A7%88%EC%84%9C%EC%9D%98+%EA%B8%B0%EC%9B%90%283%29,+http://allestelle.net/?p=1647"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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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2)</title>
		<link>http://allestelle.net/?p=164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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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8 Jun 2010 17:17:48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책읽기 20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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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0;&#60;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62;&#62;
1. &#039;일본적 사회질서&#039;라는 말
2. 근대 사회의 성취와 한계
3. 일본적 질서형성과정의 특징
Audio File Download: Reading_20M_20100609.mp3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lt;&lt;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gt;&gt;</p>
<p>1. &#039;일본적 사회질서&#039;라는 말<br />
2. 근대 사회의 성취와 한계<br />
3. 일본적 질서형성과정의 특징</p>
<p>Audio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6/Reading_20M_20100609.mp3">Reading_20M_20100609.mp3</a></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C%9D%BC%EB%B3%B8%EC%A0%81+%EC%82%AC%ED%9A%8C%EC%A7%88%EC%84%9C%EC%9D%98+%EA%B8%B0%EC%9B%90%282%29,+http://allestelle.net/?p=1642"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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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1)</title>
		<link>http://allestelle.net/?p=1638</link>
		<comments>http://allestelle.net/?p=1638#comments</comments>
		<pubDate>Sat, 05 Jun 2010 18:23:59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책읽기 20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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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나루사와 아키라(지음), 박경수(옮김), &#60;&#60;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62;&#62;, 소화, 2004. [9788984102590]
Audio File Download: Reading_20M_20100606.mp3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나루사와 아키라(지음), 박경수(옮김), &lt;&lt;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gt;&gt;, 소화, 2004. [9788984102590]</strong></p>
<p>Audio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6/Reading_20M_20100606.mp3">Reading_20M_20100606.mp3</a></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C%9D%BC%EB%B3%B8%EC%A0%81+%EC%82%AC%ED%9A%8C%EC%A7%88%EC%84%9C%EC%9D%98+%EA%B8%B0%EC%9B%90%281%29,+http://allestelle.net/?p=1638"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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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화려한 군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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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6 May 2010 19:01:23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서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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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다카시 후지타니(지음), 한석정(옮김), &#60;&#60;화려한 군주: 근대 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62;&#62;, 이산, 2003. [9788987608297]
우리가 임진왜란이라 부르는, 동아시아 삼국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는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됨으로써 에도 바쿠후[江戶幕府] 체제가 성립하였다. 260여년 후인 1868년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복고가 선포되었다. &#039;일본 근대와 천황제&#039;라는 이름아래서 논의되곤 하는 이 체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할 때1)까지 77년 동안 유지되었다. 에도 바쿠후 시대와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다카시 후지타니(지음), 한석정(옮김), &lt;&lt;화려한 군주: 근대 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gt;&gt;, 이산, 2003. [9788987608297]</strong></p>
<p>우리가 임진왜란이라 부르는, 동아시아 삼국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는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됨으로써 에도 바쿠후[江戶幕府] 체제가 성립하였다. 260여년 후인 1868년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복고가 선포되었다. &#039;일본 근대와 천황제&#039;라는 이름아래서 논의되곤 하는 이 체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할 때<sup>1)</sup>까지 77년 동안 유지되었다. 에도 바쿠후 시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이 &#039;근대화 시기&#039;는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서구화 또는 근대화를 통한 국민국가 성립과정을 탐색하는 데 적절한 모형의 역할을 할 수 있다.</p>
<p>메이지 천황이 왕정복고를 선포하고 교토에서 도쿄로 왔지만 그것으로써 천황의 권력과 권위가 확고하게 세워지고 근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일뿐이었다. 1869년의 보신전쟁[戊辰戰爭]이 끝난 후 메이지 정부는 폐번치현(廢藩置縣)을 단행한다. 이로써 지방분권적인 봉건체제를 없애고 본격적인 중앙집권체제 구축을 위한 형식적인 틀을 만든다. 그러나 이런 조처를 단행했으면서도 명실상부한 통일 중앙정부를 세우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1876년 미에 현 폭동에 가담한 이들은 정부 관리를 &#034;구니[國]의 배신자, 불법(佛法)의 적(敵)&#034;으로 불렀는데 여기서 &#034;구니&#034;는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아니라 그들이 근거지로 삼아 살던 지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034;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은 지역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국가적 유대 보다는 지역적 유대로 사람들이 똘똘 뭉쳐 살아가고&#034;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들은 &#039;국가&#039;를 생각할 수 없었다. 또한 &#034;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징집되었던 농민들은 천황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회고했다.&#034; 설혹 천황을 알고 있었다해도 &#034;메이지 시기 이전에 민중이 가지고 있던 천황의 이미지는 정치적이거나 국가공동체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치적이며 민간신앙에 뿌리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034; 메이지 유신이 선포된 지 10년이 되어 가도록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다.</p>
<p>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던 정치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확고한 국체(國體)와 정체(正體)<sup>2)</sup>를 정립하려 했다. 그들은 천황을 구심점으로 삼아 일본을 근대국민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034;근대 일본인을 특징짓는 강력한 국가의식과 정체성은 일본 열도의 지질학적 형성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연환경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근대 일본의 지배엘리트가 전략적 동기를 가지고 추진한 문화정책에 그 기원을 두고&#034;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 일본 근대화의 특이성이 있다. 천황제는 고래의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의 천황제는 봉건성, 전근대성, 후진성의 기호가 아니라 오히려 &#034;국가와 천황에 대한 숭배가 비교적 근대에 창안된 것이라는 점, 아울러 천황제가 결코 &#039;봉건성&#039;을 그 특질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본의 근대성을 창출하는 데 중심적이었다는 점&#034;에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p>
<p>일본은 1889년에는 대일본제국 헌법을 발포한다. 1895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다. 이 무렵부터 &#034;개선축제, 황실장례식, 황실결혼식, 황실 결혼 기념일 등 전혀 새로운 것들이 좀더 국제적인 감각의 국가행사의 핵심으로 등장했다.&#034; 이른바 일본판 &#039;전통의 발명&#039;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지배 엘리트가 추진한 전략의 핵심에는 천황이 있다. 이 전략은 &#034;더 나은 삶을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과 애매하고 통합되지 않은 국민적 정체성, 의식을 근대적 내셔널리즘의 방향으로 전환&#034;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동원된 강력한 수단이 바로 천황이었던 것이다. </p>
<p>천황은 가부장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친하면서도 위엄있는, 소극적 권위에서 적극적 권위로, 더 나아가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심성구조의 형성이 목표로 제시되었다. 이를 위해 일본의 지배 엘리트는 가(家)와 국(國)을 잇는 유대진작책을 시행했다. 천황과 국민을 잇는 다양한 방책들이 구상되었다. 여기에는 &#034;충성이라는 도덕적 가치에서부터 국제관계와 &#039;문명개화&#039;까지 망라&#034;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용된 것은 우선 의례였다. 천황이 직접 행하는 의례들이 발명되었다. &#034;황거 깊숙한 곳에서 거행되는 고색창연한 황실제사들이 대부분 메이지 유신 이후에 발명되었다는 것, 더욱이 천황이 직접 거행하는 13개 의례 중 11개는 역사적 전례가 없었다.&#034; 의례에는 그 의례를 행하는 장소의 발명이 덧붙여졌다. &#034;황거는 황폐한 고성에 불과했다&#8230; 일본의 가장 강력한 국가적 상징 중의 하나가 된 니주바시[二重橋]는 그저 오래된 다리였을 뿐이다. 일본인에게는 아직 국기도 국가도 없었다. 대다수 일본인 민중은 천황을 일본 국민의 중심적 상징으로 인식하지도 않았고, 국가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034; 다시 말해서 일본인들은 아직 근대화되지 않았으며 그에따라 아직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을 근대화된 국민으로 만들려면 천황이 수행하는 의례만으로는 부족했다. 장소와 기념비가 만들어져야 했다. 이를 위해서 도쿄가 수도로서의 위상을 확실하게 얻었다. 메이지 유신 10년후인 1878년까지도 도쿄는 여전히 황폐했다. 동아시아를 여행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눈에 비친 도쿄는 &#034;중심에 사람이 살지 않는 불탄 성이 눈에 띄고, 띄엄띄엄 너른 풀밭이 있으며,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건물 또는 부분적으로 서양식으로 지은 건물 몇 개로 채워진 도시에 불과했다.&#034; 이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메이지 초기 15년 동안에는 수도에서 거행되는 공적인 의례 보다는 천황이 전국을 도는 순행(巡幸)이 국가 행사의 주요 형태였기 때문이다. &#034;메이지 천황은 천하만민을 자신과 새로운 질서 아래 통합하고자 일본 전역을 종횡으로 누볐다.&#034; 그리고 이렇게 순행을 함으로써 그는 &#034;영토를 상징적으로 장악&#034;하고 &#034;천황이 사회의 중심에 있음을 과시&#034;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수도 역시 중요한 요소로서 등장할 때가 된 것이다. 1880년대에 황궁와 도쿄에 대한 지배 엘리트들의 견해가 극적으로 바뀌면서 수도의 경관에 구체적인 변화가 생겼다. </p>
<p>의례가 거행되고 그것이 거행되는 장소가 마련된 다음에는 민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1880년대부터 메이지 천황의 초상을 각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여 1897년에는 모든 소학교가 초상화를 보유하게 되었다. 1890년에 문부성은 교육칙어를 각급 학교에 하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는 메이지 유신 이후 20년에 걸친 근대화 작업의 초반 단계가 거의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는 메이지 헌법 발포식이었다. &#034;1889년 2월 11일의 메이지 헌법 발포식만큼 중요한 의식은 없었다. 이 헌법이 일본의 입헌군주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사실로만 중요했던 것은 아니다. 관련 축전은 황실행사의 새로운 양식을 출범시켰다. 더욱이 이 행사는 황실의 경사를 알리는 미래의 모든 국가적 패전트의 본보기가 되었다.&#034; </p>
<p>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전쟁이 있었으니 당연히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전통적인 사무라이 계급이 아닌 &#034;평민층에서 전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연례축제와 봉안의식이 국민들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034; 전쟁은 모두의 일이 되었다. 이제 &#039;국민&#039;은 &#039;나라를 위해 죽는다&#039;는 의식을 갖기 시작한다. 이것은 오래된 대중 동원의 정점을 찍는 일이었다. &#034;새로운 국가의례에 대중이 참여한 것을 두고 단순히 자연발생적인 애국적 열정의 결과라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대중동원은 위로부터 공식.비공식 경로를 통해 시작되었다&#8230; 학생들은 교사와 교장에 의해 계획된 의례에 참가했다&#8230; 일본국민이 되어가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근대적이고 대중적인 국가의례에의 참가는 국민공동체 의식을 습득하는 과정의 일부이지 그 결과가 아닌 것이다.&#034; 이 과정에서 반자발적인 조직들이 만들어졌다. 특히 청년단과 재향군인회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단체였다. 러일전쟁 이후부터 이 단체들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034;1912년 메이지 천황 장례식에 이르면, 이러한 조직들이 국가적 의례에 대중을 동원하는 일이 상례가 되었다. 그때쯤이면 청년단은 37가구밖에 안되는 아오모리 현의 벽촌 후지사키에도 존재했다.&#034; </p>
<p>근대화의 결과 일본인들은 두가지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034;&#039;지배와 예속&#039;에 복종하는 신민(subject)임과 동시에 &#039;양심과 자의식&#039;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주체(subject)&#034;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근대 일본인이 가진 양면성이다. 그들은 전장에서 &#039;천황폐하 만세&#039;를 외치며 죽어갔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은 천황과 일체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 점은 메이지 천황이 죽었을 때 확인되었다. 메이지 천황이 죽자 &#034;젊은 사람들에 비해 나이든 사람들이 상장(喪章)을 훨씬 적게 달았는데, 이것은 천황 중심의 국민공동체가 사실상 메이지 시대 이래의 새로운 사고임을 말해준다.&#034;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과연 자신의 삶이 이렇게 스러져도 괜찮은지를 고뇌하기도 하였다.<sup>3)</sup></p>
<p>천황이 근대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자리잡는 과정은 일본이 근대국민국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시도했던 전략들이 펼쳐진 과정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본 것은 후지타 쇼조가 &#034;천황제란 무엇인가&#034;<sup>4)</sup>에서 &#034;이른바 &#039;대중공작&#039;&#034;이라 불렀던 것, 즉 &#034;천황제가 국민의 행동양식, 생활내용, 사유형식을 어떻게 포착하고 있는가&#034;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패전 이후에도 일본인들의 심성에 살아남았다. 물론 현대의 일본국민은 &#034;천황과 그 가족을 호기심 어린 응시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연예인 취급하여 황실의 뉴스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034;<sup>5)</sup> 그렇다면 일본은 근대를 벗어난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034;천황의 아우라와 그에 대한 신념이 사그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근자에 국가와 천황제에 관한 베일이 벗겨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마치 일본 근대에 창조된 국민의 지배적인 내러티브를 믿는 것처럼 여전히 행동하는지 여전히 놀랍기만&#034; 한 것이다. 그의 놀라움은 호들갑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쇼와시대 최고의 인기가수 중 하나인 미소라 히바리의 장례를 &#039;고타이소[御大葬]&#039;라 명명한 일을 받아들였다. 황실장례에만 쓰여야할 &#039;고타이소&#039;가 가수의 장례식에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장례가 있은 지 다섯달 후에 히로히토가 죽었다. 그때 일본은 &#039;주간지 천황제&#039;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는 노마 필드의 &lt;&lt;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gt;&gt;[9788936411435]를 통해 이러한 사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D%99%94%EB%A0%A4%ED%95%9C+%EA%B5%B0%EC%A3%BC,+http://allestelle.net/?p=1628"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ol class="footnotes"><li id="footnote_0_1628" class="footnote">일본 천황은 이를 &#039;패전&#039;이라 하지 않고 &#034;종전&#034;이라 한다. 이에 관해서는 고모리 요이치의 &lt;&lt;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gt;&gt; [9788990024299]참조</li><li id="footnote_1_1628" class="footnote">여기서 &#039;국체&#039;는 천황의 지배를 가리키며 &#039;정체&#039;는 이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일본은 이 둘을 결합시켜 이른바 &#039;메이지 헌법&#039;, 즉 제국헌법체제를 성립시켰는데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과정에 관해서는 방광석, &lt;&lt;근대일본의 국가체제 확립과정&gt;&gt; [9788984943452]을 참조</li><li id="footnote_2_1628" class="footnote">자살특공대원들의 수기들은 이러한 고뇌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오누키 에미코, &lt;&lt;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gt;&gt; [9788991136038]참조</li><li id="footnote_3_1628" class="footnote">&lt;&lt;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gt;&gt; [9788990618870]참조</li><li id="footnote_4_1628" class="footnote">열혈 극우 문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이러한 상황을 &#034;주간지 천황제(週刊誌 天皇制)&#034;라 비난하면서 &#034;이른바 &#039;문화개념으로서의 천황&#039;의 부활을 통한 국민문화의 소생&#034;을 부르짖기도 하였다.</li></ol>]]></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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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유원, &#60;&#60;인문 古典 강의&#62;&#62; 북세미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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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Apr 2010 14:38:01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특강/기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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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0년 4월 30일(금) 17:30-19:30,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교재: &#60;&#60;인문 古典 강의&#62;&#62;, 라티오, 2010.
Audio File Download: Book_Seminar_20100430.zip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10년 4월 30일(금) 17:30-19:30,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p>
<p>교재: &lt;&lt;인문 古典 강의&gt;&gt;, 라티오, 2010.</p>
<p>Audio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4/Book_Seminar_20100430.zip">Book_Seminar_20100430.zi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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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유원, &#039;신화(神化)의 서사시&#03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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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4 Apr 2010 14:00:16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특강/기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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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034;신화(神化)의 서사시: &#60;&#60;정신현상학&#62;&#62;의 한 독법(讀法)을 위한 서설&#034;
2010년 4월 23일(금) 15:30-16:30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33회 월례발표회
Script File Download: KangYuWon_20100423.pdf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034;신화(神化)의 서사시: &lt;&lt;정신현상학&gt;&gt;의 한 독법(讀法)을 위한 서설&#034;</strong></p>
<p>2010년 4월 23일(금) 15:30-16:30<br />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33회 월례발표회</p>
<p>Script File Download: <a href='http://allestelle.net/wp-content/uploads/2010/04/KangYuWon_20100423.pdf'>KangYuWon_20100423.pdf</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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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의 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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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9 Mar 2010 19:16:42 +0000</pubDate>
		<dc:creator>강유원</dc:creator>
		
		<category><![CDATA[서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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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오항녕(지음), &#60;&#60;조선의 힘&#62;&#62;, 역사비평사, 2010.
0
이 글은 본격적인 서평을 쓰기 위한 기초자료이다.
1
프롤로그 첫 문단에 이 책의 대강이 담겨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034;이 책은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의 저력을 찾는 글들로 엮여 있다. 조선인들의 삶의 양식, 생각, 제도 중에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몇가지 주제를 다루어 보았다.&#034; &#034;500년 이상 지속&#034;된 것은 &#034;조선 문명&#034;이 아니라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오항녕(지음), &lt;&lt;조선의 힘&gt;&gt;, 역사비평사, 2010.</p>
<p>0<br />
이 글은 본격적인 서평을 쓰기 위한 기초자료이다.</p>
<p>1<br />
프롤로그 첫 문단에 이 책의 대강이 담겨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034;이 책은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의 저력을 찾는 글들로 엮여 있다. 조선인들의 삶의 양식, 생각, 제도 중에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몇가지 주제를 다루어 보았다.&#034; &#034;500년 이상 지속&#034;된 것은 &#034;조선 문명&#034;이 아니라 &#039;조선이라는 나라&#039;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039;조선 문명&#039;은 &#039;조선이라는 나라&#039;보다 범주가 더 큰 것이고, 그에따라 지속기간이 더 길 수도 있다. 아니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지속되었던 500년 내내 특정한 문명 또한 동시에 지속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p>
<p>저자가 &#034;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주제&#034;들은 &#034;조선 문치주의&#034;, &#034;&lt;&lt;조선왕조실록&gt;&gt;이라는 조선의 인프라&#034;, &#034;예치&#034;, &#034;국정 시스템의 혁신&#034;, &#034;성리학&#034; 등이다. 거기에 광해군 시대에 대한 해석을 다룬 &#034;조선에 대한 전도된 표상의 사례&#034;와 단종을 소재로 한 &#034;조선식의 &#039;역사바로세우기&#039;&#034;가 덧붙여졌다. &#034;광해군 시대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를 보는 관점을 규정하는 핵심 주제&#034;라 하고 있으므로 이를 다룬 &#034;6장 부활하는 광해군&#034;을 가장 먼저 읽어 책 전체에 관철되고 있는 관점을 파악한 뒤, &#034;1장 문치주의의 꽃&#034;, &#034;2장 실록, 그 돌덩이같은 저력&#034;, &#034;3장 헌법과 강상&#034;, &#034;4장 대동법, 혁신하는 시스템&#034;, &#034;5장 오래된 미래, 조선 성리학&#034;을 순서와 관계없이 읽기로 하였다. 7장과 8장은 반드시 읽어야 할 부분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였다.</p>
<p>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각각 책의 서두와 말미에 있는 것인데, 본문 독서에 들어가기에 앞서 읽었다. 프롤로그를 살펴본다. 서문에 해당하는 프롤로그에는 책의 주제와 전개과정, 책의 핵심 개념, 방법론 등이 담겨있다. 저자는 &#034;식민주의와 근대주의를 합쳐 &#039;범식민주의&#039;&#034;라 부르는데 이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논파하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034;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사람들은 조선이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지고&#034; 있으며 이는 &#034;&#039;근대=선&#039; &#039;조선=전통=악&#039;&#034;이라는 구도 위에서 내려진 가치판단이다. 이러한 구도로 조선을 파악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정리한 다음 저자는 &#034;사람들은 어떤 조건에서 적응하고 살며, 어떤 조건에서 저항하고 변화를 꿈꾸는가?&#034;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일 것이다. 저자가 역사를 파악하는 관점이나 방법론은 별개의 술어로써 제시되어 있지 않다. &#034;관심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생긴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034;으나 &#034;사실과 논리의 왜곡&#034;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방법론 표명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p>
<p>프롤로그 뒷 부분에는 우선 책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보고가 있다. &#034;이 책은 원래 &lt;&lt;역사교육&gt;&gt;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역사비평사의 조원식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책 출간을 협의하자는 연락이었다. 만났다. 그리고 곧 벗이 되었다. 책 이야기, 역사 이야기만으로 안주는 충분했다. 고마웠다.&#034; 독자에게 친근함을 안겨주는 뒷이야기이기는 하나 역사책을 읽는 독자 중에는 저자와 출판사 &#034;실장&#034;이 무엇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지 궁금해 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듯 하다. 잡지에 연재한 글을 단행본으로 묶어낼 때는, 본래의 목적과 지면의 차이, 시의성의 개입 여부 등에 관한 충분한 고려가 요구된다. 그냥 &#039;연재글 묶음&#039;이 아니라 &#039;조선의 힘&#039;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한, 그 글들을 이 제목 아래 묶어줄 수 있는 일관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의 글들을 읽으면서 잡지에 실렸을 때에는 꽤나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나 책으로 옮겨지면서 부조화스럽게 돌출된 부분들이 보였다. 술 안주로 삼은 &#034;책 이야기&#034;에 책 &#039;만드는&#039; 이야기가 들어 갔으면 좋았을 것이다.</p>
<p>두번째로 책의 문체에 관한 설명이 있다. 저자는 &#034;어려운 것은 어렵게, 쉬운 것은 쉽게 전달하는 것이 좋은 글이자 선생&#034;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어려운 것을 억지로 쉽게 고쳐서 내는 과정에 &#034;종종 모종의 &#039;야합&#039;이 개입할 수 있다&#034;고 본다. 책 전체를 읽으면서 이 부분에 유념하였으나 각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어려운 부분보다는 오히려 논의의 맥락과는 무관한 잡담들이 섞여 있어서 독서의 흐름을 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p>
<p>두 문단으로 이루어진 프롤로그 마지막에는 우선 한 문단에 걸쳐 &#034;뜰 앞의 감나무&#034;에 대한 저자의 소회가 펼쳐진다. 그 감나무가 저자의 집필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역사책을 읽는 독자에게 저자의 심성 내면에 대한 상상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두번째 문단은 이 책을 쓰고 나서 저자의 &#034;학문이 다소 변할 듯한 느낌&#034;이 있다 적고 곧바로 &#034;역사비평사 김백일 대표는 루쉰에 정통한 학인&#034;임을 밝힌다. 출판사 대표의 정통함은 그의 연구서로써 밝혀질 것이니 굳이 여기서 드러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서문 말미에 출판사 사장의 은택과 학식을 칭송하는 말들이 이 책 저 책에서 많이 보인다. 한 예로 &lt;&lt;사대부의 시대&gt;&gt;에서 역자는 출판사 사장과 자신의 지도교수(이자 그 책의 저자) 모두를 &#039;선생&#039;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lt;&lt;화려한 군주&gt;&gt;의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는 &#039;한국어판 서문&#039; 마지막 문단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034;끝으로,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주신 김재용.최정무 선생과 이산출판사에 감사한다. 누구보다도 지성과 근면으로 번역에 진력하신 한석정 선생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034; 독자들은 이런 것들을 눈여겨 보면서 책을 쓰는 필자가 출판사에 어떤 식으로 사의를 표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같은 역사학자라해도 사의의 표현방식에 따라 학자로서의 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뚜렷하게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p>
<p>에필로그에는 책을 다 쓰고 난 소회를 담을 수 있겠으나 결론과 마찬가지인 부분이므로 무엇보다도 책 전체를 마무리하는 저자의 메세지를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039;조선의 힘&#039;이 무엇인지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 프롤로그에서 거론했던 &#039;봉건/근대&#039;의 이분법에 대한 저자의 단상이 들어있을 뿐이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두 문장은 다음과 같다: &#034;바로 이 지점에서, 일상의 재편성에서, 그리고 그 연장에서 기획되지 않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틀림없이 조선시대는, 선택 가능한 오래된 미래 중 하나일 것이다.&#034; 이처럼 조선시대가 &#034;오래된 미래&#034;라고 결론을 내리려면 앞선 본문에서 조선의 제도들을 다루면서 그것의 본래 모습, 운용방식 등을 서술한 다음 현재(더 나아가 미래)의 상황에 대한 검토와 적용시 고려해야 할 사항, 적용의 한계 등이 논증되었어야만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독자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본래 모습이나 운용방식 등 뿐이다. 따라서 이 결론은 &#039;전제보다 큰 결론&#039;, 즉 논리적 비약이라 하겠다.</p>
<p>2<br />
프롤로그를 읽으며 정해둔 독서 순서에 따라 먼저 &#034;6장 부활하는 광해군&#034;을 읽었다. 이 챕터는 광해군에 대한 조선시대의 평가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들어와 일변한 뒤, 요즘에는 광해군 찬양이 난무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사료에 바탕을 둔 저자의 평가는 엄밀하고 냉정하며, 그 평가는 &#034;인조반정이 일어난 3월 14일에 왕대비[인목대비(仁穆大妃)]가 내린 교서(敎書)에 나와있는 폐위된 이유&#034;를 재확인하고 있다. 이를 놓고 독자는 광해군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재평가도 사실무근임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또한 광해군이 폐위된 이유가 오늘날의 위정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p>
<p>프롤로그에서 저자는 &#034;광해군 시대에 대한 이해는 조선시대를 보는 관점을 규정하는 핵심 주제&#034;라 하였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찾기 어렵다. 독자가 보기에는 조선시대를 보는 관점을 규정하는 핵심 주제는 &#039;문치주의&#039;<sup>1)</sup>이다. 이는 책에서 그 주제를 다룬 분량이 많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p>
<p>3<br />
&#034;1장 문치주의&#034;는 &#034;왕정은 &#039;전제적&#039;인가&#034;를 물으면서 시작하여 조선의 &#034;이념형 조직&#034;, 즉 &#034;어떠한 국가나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보여주는 조직&#034;인 언관제도, 경연(經筵)을 소개함으로써 &#034;적어도 경연에 한해서는 조선의 왕은 전제적일 수 없었다. 경연을 거부하는 것이 전제적이기 때문&#034;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경연에 대한 역사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유익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일반 독자는 독서카드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p>
<p>4<br />
&#034;2장 실록, 그 돌덩이 같은 저력&#034;은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조선시대의 사관은 &#034;관료제 일반의 관리임용원리와는 달리&#8230; 하급관리이면서도 승진할 때는 후임자를 자기가 뽑았다&#034;는 것이다. 이는 &#034;자천제(自薦制)&#034;라 하는데 영조 중반에 이르기까지 300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034;자천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안팎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034;를 묻고 있는데, 대답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독자가 답을 낼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p>
<p>이 챕터 중간에는 저자가 &#034;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의 전문위원&#034;으로 일할 때 실록을 맨손으로 만져본 이야기가 세 문단 들어있다. 일종의 사감(私感)인데, 독서에 방해가 되므로 참을성없는 독자에게는 사감(私憾)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다.</p>
<p>5<br />
&#034;3장 헌법과 강상&#034;에는 6페이지에 걸친 서설이 챕터 앞에 나온다. 이어지는 내용과의 연관성이 희박해보인다. 그에 이어서 조선의 법전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고, &#034;예의 자기화&#034; 과정이 논의된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이 건국되면서 &#034;유교를 국시로 하겠다고 했을 때&#8230; [이는] 현실 사회의 문제는 유학을 통해서 해결될 것이라는 문제의식과 방향을 제시한 것에 불과했다.&#034; 따라서 조선은 이를 완전히 자기화하는 데 오랜 기간이 필요했을 것이며, 이것이 완결된 시점에서야 비로소 &#039;조선문명&#039;이라 부를만한 것이 등장했다고 하겠다. 그때는 &#034;조선 건국에서 선조 이후 본격적인 사림정치(士林政治)가 시작되기 전까지 약 200년 간의 기간&#034;이다. 독자는 여기서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실정법과 이념이라는 두 축으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039;문치주의&#039;라는 제하의 카드에 함께 정리하면 되겠다.</p>
<p>6<br />
&#034;4장 대동법&#034;은 대동법이 &#034;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루어진 &#039;끈질긴 개혁&#039;&#034;이라는 점을 사료에 근거하여 논증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034;5장 오래된 미래, 조선성리학&#034;은 중국 성리학의 태동과 전개, 조선성리학의 전개를 정리하고 있다. 5장에서 주목할만한 점이 몇가지 있다. 저자에 따르면 &#034;양명학이 조선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 사회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양명학이 중국에서는 &#039;혁신&#039;이었지만 조선의 학자들에게는 &#039;우활(迂闊)한(뜬금없는, 현실과 거리가 먼) 소리&#039;였던 것이다. 아니, 우활하다 못해 위험한 견해였다.&#034; 다시 말해서 퇴계가 양명학을 비판할 당시의 조선은 &#039;성리학적 문제의식이 절실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즉 퇴계나 율곡의 시대가 지나 조선 성리학이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도 양명학은 여전히 &#034;우활한 소리&#034;였는가, 조선의 상황은 항상 성리학을 요구하는 것으로 고착되어 있었는가?</p>
<p>이 챕터에는 &#034;시냅스와 경(敬)&#034;이라는 부분이 있다. 퇴계가 말하는, &#034;때가 끼지 않게 하고, 낀 때를 제거하는 훈련방법&#034;인 경이라는 &#034;논제가 갖는 보편성을 음미&#034;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034;분자생물학연구를 보면서 갖게 된 최근의 착상을 간단히 소개&#034;하고 있다. 그는 칸트 철학을 간단히 정리하고 그것을 분자생물학과 짝지운다: &#034;칸트는 지식과 욕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느낌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의 &#039;비판&#039; 3부작의 구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lt;&lt;순수이성비판&gt;&gt;, &lt;&lt;실천이성비판&gt;&gt;, &lt;&lt;판단력비판&gt;&gt;. 분자생물학에서는 마음을 인지(認知), 감정, 동기의 3대 요소가 섞여있는 것으로 보았다. 칸트의 말과 짝을 이루는 셈이다.&#034; &#034;칸트는 지식과 욕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느낌이라고 했다&#034;에는 전거가 붙어있지 않다. 칸트의 원문에서 인용한 것인지, 칸트에 관한 책에서 인용한 것인지, 저자의 독창적인 해석인지 분별할 수 없다. 저자의 독창적인 해석이라면 기나긴 설명이 붙었을 것이므로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데 이 말은 따로 인용을 밝히지 않아도 될만큼 널리 알려진 견해가 아니다. 이를테면 &#039;아리스토텔레스는 &#039;인간은 폴리스에서 살아가는 존재&#039;라고 했다&#039;나 &#039;데카르트는 &#039;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039;라고 했다&#039;나 &#039;갈릴레이는 &#039;그래도 지구는 돈다&#039;라고 말하지 않았다&#039;와 같은 차원의 언명이 아니다. &lt;&lt;순수이성비판&gt;&gt;이 지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확실하나 &lt;&lt;실천이성비판&gt;&gt;이 욕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는 아주 불확실하며, &lt;&lt;판단력비판&gt;&gt;이 느낌을 다루고 있다는 것에는 진지한 연구자라면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설혹 어떤 &#034;느낌&#034;이 있다해도 그 &#034;느낌&#034;이 앞의 두 비판 &#034;사이에 존재&#034;한다는 것은 저자의 느낌일 뿐이다. 이렇게 주장하려면 최소한 이 책의 분량인 300페이지 정도의 연구서를 써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는 &#034;혹세무민&#034;의 한 사례로 보인다. </p>
<p>&#034;지식&#034;, &#034;욕구&#034;, &#034;느낌&#034;이 &#034;인지&#034;, &#034;감정&#034;, &#034;동기&#034;와 &#034;짝을 이루는 셈이다&#034;는 짝이 아님이 분명한 것을 억지로 짝지운 것이다. 앞의 두 항목들은 엇비슷하기라도 하지만 마지막 항목들은 각각이 전혀 다른 것을 지칭한다. &#039;최소한 비슷하다&#039;고 우긴다면 짝짓기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칸트의 철학과 분자생물학이 서로 다른 영역에 놓인 것들이라는 점이다. 전자는 자연과학적 탐구와는 무관한 추론의 산물이고, 후자는 현대의 기계장치와 실험을 통해 입증되는 과정에 있다. 철학을 하는 이들도 현대의 자연과학적 성과로써 과거 학자들의 통찰력이 탁월했음을 논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가지곤 한다. 그러다보면 &#039;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039;과 같은 우활한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소박한 희망사항일 뿐이요, 정확하게 말하면 근대 이후의 자연과학적 성과를 기준으로 삼아 과거의 사상을 드높이려는 &#034;근대주의&#034;의 파생물일 뿐이다. 저자는 진보를 목적으로 삼아 조선시대 역사를 평가하는 &#039;근대주의&#039;를 여러 차례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034;분자생물학연구&#034;를 바탕으로 &#034;율곡의 학문방법이 &#039;근대인인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039; 해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034;은 어떤 태도에서 나온 것일까? 이것은 근대 과학주의의 일종이 아닐까.</p>
<p>저자는 &#034;시냅스의 과정은 인격의 훈련과 성숙의 문제이다.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시냅스의 과정&#034;이라고 하면서 자아나 인격의 성숙에 대한 논의가 &#034;실체론&#034;이 아닌 &#034;관계론. 생성론의 범주에서 이루어져야&#034;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실체론적 자아관의 근거로 지칭하는 것은 &#034;계몽주의적 절대 개인&#034;이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은 그 전거가 밝혀져 있지 않다. 조선시대 사상사를 연구하는 이가 그런 말을 하려면 적어도 널리 승인된 표준도서를 전거로 제시해야 설득력이 있겠는데, 그렇지 않고 이렇게 한마디 던져두면 그것 허수아비일 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선행연구를 내놓은 적이 있는 서구 근대 실천철학 연구자가 전거없이 계몽주의의 특성을 주장하면 &#8212; 물론 이것도 잡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책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8212; 용인될 수 있겠으나 그가 조선성리학에 대해 전거없는 단언을 내놓으면 당연히 혹세무민이 될 것이다. &#034;계몽주의적 절대 개인&#034;이라는 허수아비를 앞에 두고 성리학의 탁월함을 주장하는 것은 성리학에게 미안한 일이 되겠다.</p>
<p>이 부분 마지막 두 문장은 다음과 같다: &#034;이러한 일련의 메커니즘[인지적 처리과정과 감정적 각성상태의 수반]은 주자에서, 퇴계, 율곡에 이르는 &#039;성학(聖學) 이론&#039;의 구조와 같다. 퇴계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분자생물학의 최신 연구 경향을 직관 혹은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 장의 제목을 &#039;오래된 미래&#039;라고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034; 먼저 &#034;이러한 일련의 메커니즘&#034;에는 전거가 없다.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떤 전거에서 가져온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이 성학 이론의 구조와 &#034;같다&#034;고 말하려면, 아니 적어도 &#039;같아 보인다&#039;라도 말하려면 이 역시 최소한 이 책 분량만큼이나 엄밀한 논증을 제시해야 한다.<sup>2)</sup> 또한 저자에 따르면 16세기 조선성리학자 퇴계는 21세기 &#034;분자생물학의 최신 연구 경향을 직관 혹은 경험으로 이해&#034;하고 있다. 독자는 그가 무슨 방법을 통하여 이해하였는지 궁금하다. 과거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이야기가 현대과학의 연구 성과와 우연히 일치한다해도 진지한 연구자들은 그 둘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 퇴계에 관해서는, 저자가 조선시대사를 해석할 때 주장하는 것처럼 시대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그 의의를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지 않고 450여년의 세월을 접어버리고 퇴계에게 분자생물학을 접붙이면 퇴계는 좀비가 되거나 쥬라기 공원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된다. 진지한 역사학자라면 이러한 우활한 접붙이기를 위해 아직도 논쟁 중인 분자생물학의 최신 동향을 뒤적이기 보다는 서구 근대사를 잘 정리한 책을 참조할 것이다. 존 루카스의 &lt;&lt;자연과학을 모르는 역사가는 왜 근대를 말할 수 없는가&gt;&gt;[9788995434659]를 권할 수 있다.</p>
<p>7<br />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의 두 부분을 살펴본다.<br />
&#034;그런데 왜 이성적으로 해야 하지? 이 억압기제, 분명 근대적인 것이다. 소유권 법적 인격으로 소외시켜버린 인간의 다른 표현일 가능성이 놓다. 잃어버린 나를 정당화시키는 억압기제 말이다.&#034; 이 주장에 따르면 저자는 근대적 이성과 억압기제를 동일시한다. 달리 말해서 저자는 &#039;이성적=억압적&#039;이라는 도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성에 관한 아주 협소한 견해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는데 발휘한 독서와 판단과 추론 능력, 조원식 실장을 만나 책 이야기, 역사 이야기만으로도 안주를 삼고 벗이 될 수 있었던 인간 관계 형성 능력, &#034;이덕일 소장&#034;의 &#034;혹세무민&#034;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것이 조선시대사 이해에 끼칠 악영향을 걱정하는 능력, 이 모든 것에는 이성이 개입되어 있다. &#034;이성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의 작동&#034;이고 &#034;분노나 눈물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의 작동&#034;이지만 최근의 분자생물학은 이 둘을 딱 잘라서 구별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주의자들 역시 딱 잘라 말하지 않았다.</p>
<p>다른 문장을 보자. &#034;그동안 사람들은 조선시대에 &#039;봉건&#039;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신분적 억압, 부자유, 남녀차별 등 계몽주의 서사가 덧칠한 &#039;과거&#039;, &#039;전통&#039;의 다른 이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인식을 벗어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034; 이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조선시대를 계몽주의의 서사로써 덧칠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는 신분적 억압, 부자유, 남녀차별이라는 것들로써 특징지어졌다. 달리 생각해보면, 조선시대에 신분적 억압, 부자유, 남녀차별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사태를 왜곡한, 계몽주의적 서사의 덧칠인 것이다. 그렇다면 강명관의 &lt;&lt;열녀의 탄생&gt;&gt;에 등장하는, 시부모의 병을 낫게 하려고 허벅지 살을 베어내 끓여먹이고 국가의 표창을 받은 열녀의 행실과 그것을 장려한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039;성리학적 이상이 넘쳐 흐르는 고귀한 사회의 충실한 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기의 육신을 희생함으로써 잃어버린 나를 되찾아가는 행위&#034;라고 해야 하는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034;억압기제&#034;아닐까. 억압기제는 근대 계몽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039;체제&#039;는 필연적으로 억압기제를 파생시킨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체제는 &#034;이념형 조직&#034;을 운용한다. 어쨌든 저자는 조선시대의 실상을 왜곡하면서 계몽주의 서사가 잘못 덧씌운 것을 입증하기 앞서 강명관의 &lt;&lt;열녀의 탄생&gt;&gt;이 조선시대사에 대한 왜곡임을 입증해야 할 듯하다.</p>
<p>8<br />
이 책에서 독자는 조선시대의 핵심 특징인 문치주의의 실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제도들에 관한 정확하고 풍부한 사례를 발견하여 정리할 수 있다.</p>
<p>이 책에서 독자가 읽게 되는 저자의 착상과 연구노트, 특히 현대적 논의와 관련된 부분은 &#034;혹세무민&#034;의 우려가 있는 &#034;우활한 소리&#034;이므로 철저히 간과해야 할 것이다.</p>
<p>이 책에서 독자는 잡지 연재글을 책으로 만들 때에는 필자와 편집 책임자가 만나 &#034;벗&#034;이 되는 과정에서 술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 편집에 관한 치밀한 논의를 주고받아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p>
<p align="left"><a class="tt" href="http://twitter.com/home/?status=[allestelle.net]+%EC%A1%B0%EC%84%A0%EC%9D%98+%ED%9E%98,+http://allestelle.net/?p=1615" title="Post to Twitter"><img class="nothumb" src="http://allestelle.net/wp-content/plugins/tweet-this/icons/tt-twitter-micro3.png" alt="Post to Twitter" /></a></p><ol class="footnotes"><li id="footnote_0_1615" class="footnote">&#034;조선은 문치주의 사회였다. 학맥을 통해 정치세력을 형성했고, 그 사상과 이념에 따라 정책과 노선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정책과 노선을 통해 백성들의 삶 속에서 검증을 받고, 그 검증을 통해 권력을 차지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되던 시대였다.&#034;</li><li id="footnote_1_1615" class="footnote">바렐라의 &lt;&lt;윤리적 노하우&gt;&gt;가 그런 시도의 하나이나 아직 시론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이 논의에는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이 수반되어 있다.</li></ol>]]></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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